비행기 안, 의사 7명이 달려들어 살린 '기적'..."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파이낸셜뉴스       2026.04.04 05:00   수정 : 2026.04.04 05:00기사원문
응급상황 '닥터콜'에 달려가는 의사, 소방관
"환자 사망하면 책임" 그럼에도 선의가 먼저
구조행위에 책임 면제하는 법적 보호 있어야



[파이낸셜뉴스] "의사 선생님이 계시면 도와달라.”

지난달 24일 인천에서 출발해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의 '닥터콜'이 울렸다. 방송이 들리는 순간 자리에 앉아있던 7명의 승객이 승무원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기내 화장실 앞, 그곳에는 한 중년의 외국인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네 시간여 뒤 비행기는 마닐라 공항에 착륙했고 심정지 위기에 놓인 외국인 여성은 무사히 현지 의료진에 인계됐다. 때마침 세계가정의학회 아시아태평양지역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항공기에 탑승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민의 순간도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정환 강남을지대병원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애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약 2초간 고민하는 사이, 앞에 앉아 있던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님이 먼저 벌떡 일어났고, 후배로서 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적었다.

응급조치를 진행한 과정을 설명한 글의 말미엔 "무엇보다 어려웠던 건 회항 여부를 묻는 기장의 질문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응급 환자 살리는 '닥터콜'... 생명 살리는 기적의 순간


김 교수가 적은 닥터콜은 항공기 등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승무원이 의사나 의료인을 호출하는 제도다. 이번 마닐라행 비행기 안에서 7명의 의료진이 환자를 구한 일 외에도 닥터콜을 통해 응급환자를 구조하는 사례는 꾸준히 있었다.

지난 2024년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가 새벽 뉴욕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찾는 승무원들의 기내 방송을 들었다. 흉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한 심근경색 환자였고 천 교수는 산소와 아스피린, 나이트로글리세린 등을 투여하며 응급처치했다.

인천공항에 내린 시간이 새벽이라 구급차 배차가 어렵다는 걸 파악한 천 교수는 환자가 병원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이송에도 함께 했다. 이후 환자는 무사히 퇴원했다.

2018년엔 휴가 중이던 소방관이 기내에서 갑작스럽게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한 응급환자를 구한 일도 있었다.

정원용 당시 소방장은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해 급히 의사를 찾는다'는 방송을 들었지만, 기내에 의사는 없었다. 정 소방장은 승무원에게 자신이 1급 응급구조사라는 걸 알리고 갖고 있던 산소포화도 측정기와 기내에 있던 혈압·혈당 측정기를 통해 인도 국적의 여성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산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산소 공급기와 심정지에 대비한 자동 심장충격기를 항공사 직원에게 요청했고 항공의료센터를 통해 의료지도와 의사 처방을 받은 뒤 약물을 투약했다. 신속한 응급처치 덕에 1시간 뒤 환자의 통증과 호흡곤란은 가라앉았다.

이처럼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 활동을 했다.

법적 보호 없는 선의...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


문제는 오랜 기간 법적 보호 없이 선의로 의료 활동에 나서면서 예상치 못한 폭탄이 돼 돌아오기도 했다.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6년 중국 난징에서 발생한 '펑위 사건'이다.

사업가인 펑위는 고령의 여성을 도운 뒤 오히려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이 사건은 중국 사회에서 ‘선행이 범죄가 될 수 있는가’라는 도덕적·법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선의의 구조행위에 대해 책임 면제 규정'을 명문화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도 응급처치 과정에서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과실치상 등의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도와주고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특히 의료계에선 항공기와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는 의료기기와 약물이 부족해 처치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보호가 없다면 구조행위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온 법 '선한 사마리아인 법'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게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제5조의2'다. 일명 ‘선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불린다.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위기에 처한 타인을 일정 요건 하에서 도운 사람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거나 감면해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현재 한국의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일정 부분 기능은 하고 있지만, 실효적으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적용 범위의 제한성과 불명확성이다.법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만 면책을 인정하는데, 이 ‘중대한 과실’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구조자가 사후 법적 판단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민사 책임은 감면될 수 있어도 완전히 면책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여전히 소송 부담이 남아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김 교수의 '2초 멈칫' 표현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실제 김 교수는 의료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초간 머뭇거렸다는 것은 닥터콜에 응했다가 소송에 걸리거나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이 생길 수 있어 의사들이 겪는 흔한 긴장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한 사마리아인법에서도 의사들은 예외로 빠져 있는 것으로 안다. 부끄러움을 가지라는 말씀은 새겨듣겠다”고 했다.

목소리 낸 의협... "응급의료 면책 제도 한계"


대한의사협회도 목소리를 냈다. 지난 2일 진행한 정례브리핑에서 기내 응급환자를 구조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응급의료 면책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의협 김성근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비행기라는 공간은 의료기관이 아님에도, 닥터콜에 응해 처치할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게 된다”며 “환자가 사망에 이르거나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선의로 나섰음에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규정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통화에서도 김 이사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핵심이 ‘도움을 주는 것이 위험이 아닌 사회적 책임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결과가 좋으면 괜찮지만, 사망 등으로 이어질 경우 문제가 된다. 해당 법은 환자가 '사망'에 이를 경우 의료진에게 면책이 아닌 '감면'이라는 표현을 쓰며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의사라도 위급 상황이 오면 '멈칫'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응급 상황과 무관한 진료 과목의 의사는 기관 삽관, 약물 처방 등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의료진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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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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