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작은 틈새, 그곳에서 삶을 복습하다…연극 '비밀통로'

파이낸셜뉴스       2026.04.04 10:00   수정 : 2026.04.04 10:00기사원문
[日 극작가 마에카와 도모히로 원작 연극 '비밀통로: THE INTERVAL']
생과 사의 틈새에 놓인 기묘한 밀실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맞추는 두 남자
무대의 여백을 촘촘하게 채우는 두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



[파이낸셜뉴스] 낯선 방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않는 곤혹스러운 상황.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곤 오직 서로의 얽히고설킨 기억이 활자로 새겨진 수많은 책들뿐. 그들은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누구인지, 또 당신은 누구인지 기억을 채워나가야 한다.

최근 대학로 NOL 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비밀통로: THE INTERVAL(이하 '비밀통로')'은 일본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희곡 '허점의 회의실'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일본 현대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마에카와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SF나 초자연적인 기묘한 설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특유의 스타일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일상 속에 숨겨진 기묘한 판타지를 통해 삶과 죽음을 통찰하는 마에카와 특유의 세계관이 무대 위에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지워진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기묘한 밀실극


극의 중심에는 생의 기억을 잃은 두 남자, '동재'와 '서진'이 있다. 이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이 미지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과거가 담긴 책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잊고 있던 인연과 엇갈린 선택, 그리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단순한 밀실 미스터리처럼 시작된 극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기억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점차 깊은 철학적 사유로 나아간다. 삶의 끝자락, 혹은 죽음의 문턱이라는 '작은 틈새(Interval)'에서 자신의 인생이 담긴 책을 읽어나간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그 때문일까,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는 ‘죽어서까지 책을 읽어야 하다니’라는 불평과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왜 삶을 복습해야 하는가"


'비밀통로'가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묵직한 질문은 바로 '반복된 삶에 대한 복습'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활자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후회 없이 그 책장을 덮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후회와 상처로 얼룩진 기억조차도 결국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텍스트임을 담담하게 일깨운다. 동재와 서진이 책을 통해 서로의 연결 고리를 깨닫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혼란 속에서도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동재' 역에는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사랑받는 김선호, 양경원, 김성규가 캐스팅되어 3인 3색의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에 맞서 얽힌 인연의 진실을 마주하는 '서진' 역에는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이시형, 오경주, 강승호가 나서 팽팽한 연기 합을 맞춘다. 이들의 세밀한 호흡은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관객을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끌어당긴다.
연극 '비밀통로'는 대학로 NOL 씨어터 우리투자증권홀에서 5월 3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