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자산가 부모가 '30만원 용돈' 거절한 이유..."나보다 가난한 내 자식"

파이낸셜뉴스       2026.05.02 08:30   수정 : 2026.05.02 08:30기사원문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vs 자산 정점 찍은 X세대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어버이날 아침. 서울 노원구에 사는 박미숙 씨(60·가명)는 딸이 보낸 카카오톡 용돈 송금 알림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 '받기'를 누르지 않았다. 대신 '마음만 받을게. 네 전세 대출 이자 갚는 데 보태라'며 답장을 보냈다.

딸 부부는 합산 연봉 1억원대의 건실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서울 외곽 아파트 보증금 대출을 갚느라 매달 100만원 넘게 지출한다.


반면 박 씨 부부는 은퇴 전 마련한 아파트 덕에 순자산은 7억원이 넘는다. 물론 그 돈이 쓸 수 있는 현금은 아니다. 박 씨는 "부동산이 대부분이라 쓸 돈은 많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딸이 준 30만원을 마음 편하게 받기에는 아이들의 삶이 너무 팍팍해 보였다"고 털어놨다.

'마처세대' — 가장 고단했던 세대가 살아남았다


'마처세대'. 지금의 50·60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위로는 노부모, 아래로는 성인이 된 자녀를 챙기면서 정작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삼중고의 세대다.



수치로 보면 더 선명하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지난 2024년을 기준으로 1960년대생과 1970년대생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60년대생의 경우 응답자의 44%가 부모님을, 43%는 자녀를 지원했다. 월 평균 지원 규모는 각각 73만원, 88만원이었다.

1970년대생의 경우에는 42%는 부모님, 76%는 자녀에 대한 지원을 했다.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이른바 '더블 케어(Double Care)' 비중은 1960년대생은 15%, 1970년대생은 25%에 달했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마음을 갖고 지원을 하면서도 부담은 느끼고 있었다.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대해 1960년대생은 46%, 1970년대생은 57%가 부담된다고 답했고 부모님 지원에 대해서는 각각 33%, 48% 수준이었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김용익 이사장은 당시 조사결과에 대해 “이러한 결과는 60년대생의 경우 자녀 성장과 독립으로 자녀 부양 부담이 줄어든 반면, 70년대생은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그리고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부양에 대한 부담을 과중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고단'했지만 '자산'은 불었다


그런데 이 고단한 세대에게 시간은 이상한 선물을 남겼다. 부양하느라 정신없던 사이 자산이 불어 있었다.

X세대는 가장 부유한 세대다. 집값이 오르는 시기를 통과했고 금리가 낮던 시절에 집을 살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산 가격 상승의 흐름을 함께 탔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2025년 3월 말 기준)에서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은 50~59세가 5억5161만원으로 전 연령대 중 1위를 기록했다. 60대 순자산은 5억3591만원, 40대의 경우는 4억8389만원 수준이다.

자녀 세대인 30대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크다. 39세 이하의 순자산은 2억1950만원 수준이었다.

문제는 방향이다.

40대 이상은 자산이 늘고 있지만 30대 이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2025년 40대의 순자산은 7.4% 늘었고 50대와 60대의 자산규모도 각각 7.9%, 3.2% 증가했다. 반면 39세 이하의 순자산은 1년전에 비해 0.9% 감소했다.

또 같은 조사에서 소득 증가율은 50대가 5.9%로 전체 평균을 웃돈 반면, 30대 이하는 1.4%에 그쳤다. 자산도, 소득 증가 속도도 세대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주택 보유율도 크게 떨어졌다.

또 2024년을 기준으로 30대 이하 중 집을 가진 사람은 10명 중 1명(10.6%)에 불과하다. 2012년 18.6%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12년만에 8.0%p나 떨어진 것이다.

부모는 집값 상승의 수혜자가 됐고 자녀는 그 집값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이에 2030세대는 부모보다 못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버이날보다 더 큰 지출이 기다린다


자산 격차가 커질수록 부모의 지원 규모도 커진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올해 초 발표한 '2026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총 결혼비용은 평균 3억8113만원이다. 이 중 주택 비용만 3억2201만원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서울의 경우 신혼집 마련에만 평균 3억8464만원이 든다.

한국리서치 2025년 결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혼인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내 집 마련 등 결혼비용 증가'를 꼽았다. 자녀 혼자 마련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자연스럽게 부모가 나서게 된다.

결혼 지원이 끝나도 또 있다. 어린이집 대기, 육아 공백이 이어지면 이번엔 손주 돌봄이 기다린다.5월 어버이날 봉투에 담긴 몇 만원보다 이 세대가 자녀에게 쓰는 돈과 시간은 비교가 안 된다.

"준 용돈 다시 굴려줄게"… 투자 노하우 전수하는 부모들


이 변화는 어버이날 풍경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전에는 자녀가 주는 용돈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한번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이 돈이 나에게 필요한지 아니면 자식에게 더 필요한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부모들이 돈을 받지 않는 것은 여유롭기 때문은 아니다. 자녀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힘든 시기를 겪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양보'하는 것이다.

또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녀가 준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투자하거나 투자 노하우를 직접 가이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이재호 씨(61·가명)는 최근 딸에게 받은 용돈 30만원을 배당형 주식연금펀드(ETF) 계좌에 그대로 입금했다. 이 씨는 "딸이 준 돈을 써버리기엔 아이들 앞날이 너무 팍팍해 보였다"며 "대신 배당이 잘 나오는 종목에 넣어두고 나중에 목돈이 필요할 때 보태주려 한다"고 말했다.

"받는 것도 사랑"… 형편에 따른 각자의 어버이날


물론 봉투를 밀어내는 풍경이 모든 부모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녀가 건네는 봉투를 기쁘게, 혹은 미안해하며 받는 것 또한 부모의 엄연한 권리다.

경기도 부천의 윤성철 씨(61·가명)는 최근 아들이 보낸 용돈 20만원을 고맙게 받았다. 중소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퇴직한 윤 씨는 현재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 남은 몇 년을 '소득 공백기'로 버티고 있다.

시세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한 채가 자산의 전부인 윤 씨에게 매달 들어오는 현금은 늘 간절하다.

윤 씨는 "솔직히 지금 20만원은 크다"라며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아빠 맛있는 거 사 드세요'라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내 노고를 인정받는 것 같아 뭉클했다"고 털어놨다.

핵개인의 시대, 그런데 가족은 다르다


핵개인의 시대다. 각자 알아서 사는 게 기본이 됐다. 노후도, 생활도, 책임도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가족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부모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식은 한 번 더 망설인다.

부모 세대 내부에서도 격차가 있다.

같은 50·60대라도 연금과 금융자산으로 현금 흐름이 있는 가구와 부동산에 자산이 묶여 현금이 부족한 가구의 차이가 크다. 50대의 절반 이상이 대출을 안고 있고 은퇴 이후에도 빚을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산이 많다'는 말이 바로 '여유롭다'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갈리는 건 하나다. 자산이 아니라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이다.부동산 외에 개인연금,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을 통해 적절한 현금흐름을 갖고 있다면 '여유'롭겠지만 준비하지 않았다면 유동성을 만들어야 한다.

최고의 효도는 '자녀의 자립'


시대가 변하며 효도의 정의도 재편되고 있다. 과거의 효도가 '봉양'이었다면, 이제 부모들이 꼽는 최고의 효도는 자녀의 '자립' 그 자체다.

박미숙 씨가 용돈을 거절한 속내도 "돈 아껴서 하루라도 빨리 네 앞가림을 하라"는 응원에 가깝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자녀는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마음, 그것이 이 시대가 마주한 새로운 어버이날의 풍경이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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