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 개미 호구로 보는 유상증자 "이젠 참지 않아"
파이낸셜뉴스
2026.04.11 07:00
수정 : 2026.04.11 07:00기사원문
한화솔루션 사태로 보는 유상증자 잔혹사 1화
[파이낸셜뉴스]한국예탁결제원이 발표한 지난해 말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 숫자는 1456만명에 달한다. 주식 거래 활동 계좌수는 1억개가 넘는다. 과거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은 시쳇말로 '호구' 취급을 당했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 '20년 박스피', '개미 지옥', '국장은 홀짝이다' 등 한국 주식시장을 비하하던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코스피는 올 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주가지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대통령의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망신"이라는 엄중한 경고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헬(hell)장'을 그래도 어느정도 합리적인 시장으로 바꿔가는 중이다.정부는 전국민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쏠렸던 자본시장을 이제 기업과 투자자가 윈윈하는 주식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 전국민 자산 대이동'을 추진 중이다. 국민 중 일부가 하는 주식투자, 그래서 정치권도 기업도 소액주주를 호구로 봤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이제는 전국민 주식투자 시대가 열리면서 소액 주주의 권리보호도 강화되고 있다. 4400만 전체 유권자수 가운데 3명 중 1명이 주식투자자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된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후폭풍은 여전히 5년전, 10년전 관행에 머물러 있는 대기업의 현재 혹은 우리 자본시장 변화의 변곡점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시대의 종말
'유상증자'는 말 그대로 회사가 돈이 필요해서 새로운 주식을 돈 받고 찍어내는 것이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주주의 동의가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과거 우리 주식시장은 대주주, 혹은 소액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재벌 사주가 허수아비 이사회를 앞세워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문제가 됐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주식이 전체 10조각인 피자라고 가정해 보자. 주주는 총 10명으로 한 조각씩 피자를 가지고 있다. 어느날 회사가 5조각의 피자를 더 팔기로 결정했다. 10명이 먹던 피자를 15명이 먹어야 하니 기존 주주의 지분(피자 조각)은 줄어들게 된다.
기존 주주들은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게 되니 회사는 기존 주주에게 새로 만드는 조각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할인 쿠폰'을 주기로 한다. 이 할인 쿠폰이 바로 '신주인수권'이다. 쿠폰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한 조각에 1만원, 한 판에 10만원이 피자가 15조각이 되는 것이므로 할인쿠폰은 33.3% 이상이 돼야 기존주주들이 서운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피자조각이 10조각에서 15조각으로 늘어나면서 33.3% 손해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적인 피자 오븐을 구매하거나, 추가 매장을 열면 미래 피자 가게의 수입이 늘어나고 기대감이 반영돼 주식 가치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대주주 개인의 지배권을 늘리거나, 과거의 빚을 갚는 일 등을 하면 기존 주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주식수가 늘어난 만큼 기존 지분이 희석되면서 주식의 평가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주 동의를 받지 않은 기습 유상증자와 함께 소액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가 물적분할이다.
유상증자가 "내 피자 조각을 작게 만드는 것"이라면, 물적분할은 내가 피자를 산 이유인 "맛있는 토핑"만 쏙 빼서 옆집에 갖다 놓는 것"과 비슷하다.예를 들어 'Y피자'가게는 차별화된 소스로 유명했고 회사를 상장시켜 주주들에게 투자금을 모집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Y피자 본사는 '소스 만드는 부서'를 따로 떼어서 추가로 'YZ소스'를 상장한다. 기존 주주들은 소스맛 때문에 Y피자에 투자했는데 물적 분할 후에는 소스 없는 피자 가게에 투자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 시킨 LG에너지솔루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카카오 역시 한 회사로 출발해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등을 연이어 분할 상장시키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과거에는 피자가게 사장단(이사회)이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유상증자, 물적분할을 단행해도 소액 주주들은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과거 우리 상법 '제382조의 3'에 규정된 이사의 충실 의무 규정에 대한 법원의 해석 때문이었다. 해당 규정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소액 주주의 뒤통수를 치더라도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면 법원이 면죄부를 줘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2025년 7월 22일부터 시행된 상법 개정안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가 법조계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터진 대규모 주주 가치 훼손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과 CJ CGV의 유상증자 평행이론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26일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 발표했다. 한화 솔루션 기존 주식수의 약 42%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10조각인 피자에서 4조각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 중 1조4900억원은 채무 상환, 9700억원은 시설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시 전 4만5000원이던 주가는 공시 후 하루 만에 3만6800원으로 폭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주 예정 금액이 3만3300원이었던 것이다. 새 주식을 3만3300원에 살 수 있으니 그 가격까지 주가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소액주주들이 분노한 부분은 회사의 유상증자 발표 과정이었다. 공시 바로 이틀 전 주주총회에서 발행 예정 주식 총수를 늘리기로 정관 변경을 한 뒤 이틀 만에 유상증자 공시를 한 것이다. 유상증자를 결정하는 이사회 멤버들은 사전에 유상증자 계획을 알고 있음에도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 3일 열린 개인 주주 대상 간담회에서 정원영 한화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금융감독원 사전 교감 발언'을 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금감원이 유상증자에 대해 묵시적 동의를 해줬다는 취지였다.이후 회사는 정 CFO를 대기 발령하며 개인의 실언이라고 해명했다. 금감원도 "증권신고서 심사는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라 증권신고서 제출 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사전에 내용을 조율하거나 승인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기업들의 부당한 유상증자를 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사전에 기업과 교감했다는 발언은 비록 실언일지라도, 일부 투자자들에게 과거 여러차례 있어왔던 유상증자 심사 과정에서도 감독당국이 눈을 감아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2의 CJ CGV'사태라는 비판이 나왔다.CJ CGV 유상증자 역시 전형적인 나쁜 유상증자의 사례로 꼽힌다.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발생한 막대한 손실을 새 주주에게 손을 벌려 메우려 했기 때문이다.
CGV는 2023년 6월 20일 주식시장 마감 후 약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발표한다. 당시 CGV 시가총액이 약 7000억원 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었다.
주가는 20일 기준 1만131원에서 다음날 7993원으로 급락한다. 그도 그럴것이 유증을 통한 새 주식 발행가격이 공시 기준 7630원이었다. 기존 주주들은 하루 만에 25% 이상 손실을 봤다. 주가는 이후에도 하락을 거듭해 7월초에는 5000원대 밑으로 떨어진다.
가장 큰 비판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주주에게 전가했다"는 목소리였다. 회사는 2016년 무리하게 터키의 극장 체인(마르스)을 인수했다가 수천억원의 손실을 봤는데 그 때 생긴 빚을 주주의 돈으로 갚는 유상증자였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전인 2023년초 1만3000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5000원 미만으로 60% 이상 하락했다.주식수도 4700만주에서 1억6500만주 이상으로 3.5배 가량 늘었다.
2023년 7월 당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CGV 사례가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사태'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모기업인 CJ가 유상증자 참여를 위해 현금을 쓰는 대신 완전자회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과대 평가해 CJ CGV에 현물출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과거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춘 것처럼 CJ가 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9월 서울서부지법은 CJ가 제출한 감정보고서에 대해 "CJ올리브네트웍스의 주식 가치가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승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9개월간의 법적 공방 끝에 2024년 6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 결정을 취소하고 유상증자를 승인해 줬다. 서울고법은 "기업가치가 부풀려졌을 가능성보다는 기업과 전문가의 판단 영역"이라며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CJ CGV와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사례는 4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기습 공시 ▲주가 급락 ▲물량 폭탄 ▲빚 잔치라는 점에서다. CJ CGV는 특별한 예고 없이 1조원대 증자를, 한화솔루션도 주총 이틀후 기습 증자 소식을 발표했다. 두 회사 모두 공시 발표 당일 및 직후에 20% 안팎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CGV는 증자 후 발행 주식 수가 2배 이상 늘었고, 한화솔루션 역시 기존 주식의 42%에 달하는 신주 발행 계획을 밝혔다. CJ CGV는 '미래 극장 인프라 구축'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빚 갚기를 우선했고, 한화솔루션도 '태양광 차세대 기술 투자'를 앞세웠지만 조달 금액의 60% 이상인 1조5000억원이 채무 상환을 위한 목적이었다.
차이점도 있다. CJ CGV는 OTT 등장으로 인해 사양 산업이라는 의구심이 컸던 반면, 한화솔루션은 태양광이라는 신성장 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이다. 즉 CJ CGV 사태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면 한화솔루션은 "독의 구멍을 막고 새 물을 채워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반면 한화솔루션의 유증이 더 위태로운 점은 상법개정안 통과로 소액 주주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도 경영진의 경영 실패로 인한 부채 누적을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해결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 따르면 한화솔루션 소액주주 3%가 결집해 향후 임시 주주총회 소집과 사외이사 해임 추진에 나설 방침으로 알려졌다. 3%를 달성하면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 주주 제안, 이사·감사 해임 절차 진행 등이 가능하다.
주주들이 비판이 커지자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는 8일 8400억원 규모의 신주 배정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화 그룹 측은 "소액주주들의 유상증자 참여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지난 9일 한화솔루션이 지난달 26일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환주의 시선'은 특정 이슈를 기존의 단순 기사 형식을 넘어 기자수첩, 내러티브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나가는 온라인 전용 코너입니다. 다음화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무분별한 유상증자 사례를 비교 분석해 볼 예정입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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