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줘야할 수억 떼먹어도 집행유예…'인정社정' 봐주는 法

파이낸셜뉴스       2026.04.08 18:21   수정 : 2026.04.08 19:49기사원문
최근 5년 임금체불 판결문 분석
벌금형 60%… 징역형은 12%뿐
경영난·변제 노력 등 감경 사유
합의 중심 양형체계도 실형 제한

연간 2조원에 달하는 임금체불이 반복되고 있지만 법원의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범죄임에도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등 고착화된 '솜방망이 처벌'이 임금체불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파이낸셜뉴스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5년간 선고된 임금체불 관련 판결문 50건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은 30건으로 전체의 60.0%를 차지했다.

집행유예는 9건(18.0%), 징역형은 6건(12.0%)에 그쳤다. 대부분의 사건이 실형 없이 마무리된 셈이다.

현행 양형기준 역시 낮은 처벌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임금체불액이 1억원 이상이어도 기본 형량이 징역 8월~1년 6월 수준에 머물고, 감경 사유가 폭넓게 인정되면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판결을 보면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실형은 체불액이 크고, 피해자가 많거나 횡령·사기 등 다른 범죄가 결합된 경우에 제한적으로 선고됐다. 지난해 광주지방법원은 근로자 11명의 임금 등 약 5억원을 체불하고 횡령과 사기까지 저지른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운영자에게 징역 3년 4월을 선고했다.

반면 체불액이 억대에 육박해도 벌금형에 그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서부지법은 퇴직근로자 5명의 임금과 퇴직금 약 99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 A씨(51·남)에게 벌금 600만원의 형을 내렸다. 경영난과 근로복지공단의 대지급금 지급,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을 참작했다.

억대 체불에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장기 근속자의 퇴직급여를 포함해 2억원대 금품을 지급하지 않은 운수업체 대표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일부 변제 노력과 반성 등이 양형에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낮은 처벌 수위가 단순한 양형 문제가 아니라 수사와 재판 전반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이 법원까지 이어지는 비율 자체가 낮고,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더 적다는 것이다.

여수진 민주노총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 구조 때문에 합의하면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임금이 생계와 직결되다 보니 근로자 입장에서는 처벌보다 돈을 받는 것이 우선이고, 결국 합의 중심으로 사건이 정리되는 구조였다"고 짚었다. 이어 "노동청 신고부터 기소, 형사처벌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매우 낮아 상당수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사건이 합의 중심으로 정리되는 흐름은 재판 단계에서도 이어진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양형 체계상 실형 선고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종연 일과사람 변호사는 "현행 양형기준 대부분이 집행유예가 가능한 구간에 포함돼 있어 실형 선고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합의나 일부 변제, 경영상 어려움 등이 인정되면 형이 크게 낮아지는 구조가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또 "실무적으로는 합의가 이뤄지면 벌금형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고, 기존 판례가 누적되면서 처벌 수위가 낮게 유지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반의사불벌죄 구조 변경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 노무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성 입증이 필요해 실제 활용이 쉽지 않고,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민사적 보상에 가까운 제도"라며 "양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 변호사 역시 "입증 부담과 소송 비용 문제로 현장에서 체감되기 어렵다"며 "실질적인 억제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양형 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이 이어진다. 조인선 변호사는 "과거 벌금형 중심에서 집행유예 비중이 다소 늘어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실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실제 재판에서는 다양한 감경 사유가 폭넓게 반영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반의사불벌죄 구조 개선과 양형기준 재설계, 근로감독 강화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현재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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