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속의 하나 '중동 문명'
파이낸셜뉴스
2026.04.09 18:08
수정 : 2026.04.09 18:36기사원문
아버지는 고심 끝에 같은 반지 둘을 더 만들어 나눠준다. 아버지가 죽은 뒤 아들들은 서로 자신이 진정한 상속자라고 주장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 반지인지 가려낼 길은 없다. 여기서 세 반지는 중동의 세 종교를 상징한다. 보카치오는 어떤 종교가 진리인지 칼을 들고 다툴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지혜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주제를 말하고 있다.
유럽의 어원이 된, 지중해 연안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Europe)를 제우스가 크레타로 데려와 미노스 문명을 이루었다는 내용이 그리스신화에 실려 있다. 그만큼 중동은 유럽에 앞서 문명이 발달했고, 동서양의 교류도 활발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민족, 언어 그리고 종교가 매우 복합적인데, 이를 특징짓는 말로 흔히 모자이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중동에서는 아랍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페르시아어가 사용된다. 종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크게 나누면, 이슬람교(수니파와 시아파)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가 이 땅에 모자이크처럼 분포되어 있다.
이 세 종교는 모두 이웃사랑을 강조하는데, 그 뿌리가 구약 레위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구절에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누구인가. 이는 내 가족이나 국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이방인, 심지어 원수까지 포괄한다. 과거 600여년간 중동을 통치한 오스만제국의 밀레트(Millet) 제도는 이러한 공존의 철학을 현실에 구현한 사례였다. 다양한 민족과 다층적인 문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영토를 거느리면서 오스만제국은 각각의 민족들이 자체의 관습과 율법에 따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자치권을 허용하여 대대손손 문화공동체를 이루었다.
20세기 들어 종교와 종파 간의 반목, 인종의 대립, 경제·정치적 욕망의 갈등으로 중동에서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종교를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에서 그 본질을 찾는 칸트의 철학이나,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여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을 종교의 목적으로 간주한 존 듀이의 사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모자이크는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함께 모일 때,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된다.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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