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속 미생물이 보내는 '비밀 메시지', 지방간염 치료 열쇠였다
파이낸셜뉴스
2026.04.13 05:56
수정 : 2026.04.13 05:56기사원문
<25>국민대 곽민진 교수팀
인공지능 결합해 진단 정확도 90% 달성
차세대 간 질환 치료 길 열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고통스러운 검사 대신 대변과 혈액으로 진단
지방간염(MASH)은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옆구리에 긴 바늘을 찔러 간 조직을 직접 뽑아내는 '아픈 검사(간 생검)'가 필요했다.
■100일간의 추적으로 밝혀낸 장내 미생물의 정체
연구팀은 특별히 설계된 먹이를 쥐에게 100일간 먹이며 지방간염 상태를 만들었다. 이후 20일마다 간 조직과 혈액, 장 내용물을 채취해 장내 세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그 결과, 병이 심해질수록 늘어나는 세균과 줄어드는 세균이 뚜렷하게 갈렸다. '롬부치아 호미니스'라는 세균은 질환이 악화될수록 증가하며 간에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쌓이게 하고 염증을 키웠다. 반대로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는 병이 진행될수록 줄어들었다. 연구팀이 이 착한 세균과 세균이 내뿜는 작은 주머니(소포체)를 쥐에게 먹이자, 지방을 만드는 유전자 활동이 줄어들고 간 손상 지표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혈액 수치와 장내 세균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혈액 검사만으로 병을 맞힐 확률은 약 82%, 세균 정보만으로는 약 84%였다. 그런데 두 정보를 합치자 정확도가 90%를 훌쩍 넘었다. 장내 미생물 정보가 혈액 검사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몸속 신호를 완벽하게 보완해 준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한 셈이다.
이번 성과는 장 속 미생물과 간 질환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정밀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록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이고 미생물의 주머니가 간에 직접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대변과 혈액만으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발견은 국민대학교 곽민진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으며 박병혁, 최혜진 연구원 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연구 결과는 약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인 '파마콜로지컬 리서치(Pharmacological Research)'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