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EPC 기업들, 이란 재건 초기 주도 전망…韓기업 수주 가능성은?
파이낸셜뉴스
2026.04.15 10:34
수정 : 2026.04.15 10:34기사원문
이라크 선례로 본 '패권적 재건 구도'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이란의 2차 휴전 회담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건설·플랜트 업계의 시선은 이미 '전후 재건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란 재건 초기 국면에서도 미국 EPC(설계·조달·시공)기업들이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 그 근거는 이라크전의 전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이라크가 남긴 교훈…재건은 美편에 선 나라의 몫
당시 KBR은 단독 수의계약으로 석유 인프라 복구를 맡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합산 16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고, 벡텔·플루오르 등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나눠 가졌다. 반면 이라크전에 반대한 프랑스·독일·러시아 기업은 180억 달러 규모 입찰에서 공식 배제됐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전쟁에 협조한 나라에만 재건의 문이 열렸다는 것, 이것이 이라크가 남긴 가장 냉혹한 교훈"이라며 "물론 이라크 재건의 최대 수혜자였던 KBR·벡텔·플루오르 등이 이번에도 같은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군이 미국 정부 조달 네트워크, 중동 현지 수행 경험,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큼, 이란 재건 초기 국면에서 미국계 EPC 기업들이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韓 기업의 현실 "직접 수주는 현재 사실상 차단, 선제적 파트너십이 핵심"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장벽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실제 지난 2015년 핵합의(JCPOA)로 제재가 일부 완화됐을 때 현대건설·대우건설 등이 이란 진출을 시도했지만, 달러 결제 불가·미국산 기자재 사용 제한 등으로 사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8년 트럼프 1기의 JCPOA 탈퇴와 함께 즉시 철수해야 했다. 제재가 유지되는 한 한국 기업의 직접 수주는 불가능하며, 이 리스크를 감수할 여력이 있는 기업도 사실상 전무하다. 즉, 미국이 제제를 해제하거나 완화하지 않는 한 힘든 구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서 관측하는 현실적인 참여 경로는 두 가지다. 단기적으로는 KBR·벡텔 등 미국 EPC 기업이 원청을 맡고 한국 기업이 시공·기자재·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하도급 파트너 구조, 중장기적으로는 제재 해제 이후 직접 수주다. 다만 후자는 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삼성 E&A,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대형사는 중동에서 LNG 플랜트·정유·석유화학 등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력이 있어, 미국 기업의 파트너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텍, SNT에너지 등 이라크 재건을 주도했던 미국 EPC 기업들과 꾸준히 협력해온 중소형 업체들도 자연스러운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란 재건 시장은 분명 메가 기회지만 그 문은 미국 제재와 동맹 외교라는 이중 자물쇠로 잠겨 있다"라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당장의 현실적인 출발점은 미국 EPC 기업의 협력 파트너로서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지만, 제재가 단계적으로 풀리는 흐름 속에서 직접 수주의 문도 서서히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물론 제재 완화가 당장 현실화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미국이 이란 재건 시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상 한국 기업들은 당분간 워싱턴의 눈치를 살피며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짚었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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