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국가가 부모가 된다

파이낸셜뉴스       2026.04.20 09:00   수정 : 2026.04.20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소년비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소년재판은 애초에 처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법정에 앉아 있다 보면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소년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은 유독 마음이 무거워지는 공간이다. 소년 법정에서는 민사 법정이나 형사 법정과 달리 재판 당사자인 소년을 마주 보게 된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미성숙한 아이들이고 방청석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훔치는 부모들이 앉아 있다. 필자가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는 동안 수천 건의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소년재판은 단순히 소년의 비행(非行)을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자리는 소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이자 어른들의 실패를 되돌아보는 자리이다.

처벌이 아닌 '교화'를 향하여

소년재판과 형사재판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형사재판이 '죄에 걸맞은 벌'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소년재판은 '비행(非行)을 저지른 소년을 어떻게 바른길로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는 재판이다. 이 때문에 소년재판은 범행 자체보다 더 넓은 개념인 소년의 '비행성'을 살핀다. 단순히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그 소년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래서 소년재판에서는 사건 자체보다도 소년의 삶 전체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학교생활, 또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환경까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절도를 저질렀더라도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처음으로 실수한 소년과 오랫동안 방치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비행을 저지른 소년에게 똑같은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 실제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친 절도 사건이라도 가정환경(보호력)에 따라 1호 처분(보호자 감호위탁)을 받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10호 처분(장기 소년원 송치)을 받게 되는 소년도 있다. 이것이 바로 소년재판의 본질이다. 즉 안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소년과 그렇지 못한 소년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서로 다른 처분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소년재판은 형사재판처럼 정해진 형량을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아이에게 어떤 조치가 가장 필요한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소년재판의 결과로 내려지는 보호처분은 전과(범죄경력)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아직 성장 중인 소년의 실수가 평생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소년에게 낙인을 찍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의 결과이다. 대신 경우에 따라서는 비행소년뿐만 아니라 그 소년의 보호자에게도 교육을 명하는 등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비행을 저지른 소년 외의 제3자에게까지 처분을 확장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소년재판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소년재판은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만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소년법은 '우범소년(虞犯少年)'이라는 개념을 두고 있다.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에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을 반복하거나, 음주 후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소년이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소년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문제 행동이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먼저 개입하겠다는 예방적 사법의 일환이라고 불 수 있다.

소년재판에 사건이 접수되는 경로는 크게 네 가지다. 검찰의 소년부 송치, 경찰의 소년부 송치, 법원의 소년부 송치, 그리고 보호자·교사·보호시설장 등의 통고가 그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가출을 반복하는 자녀에 대해 부모가 직접 가정법원에 통고하는 '보호자 통고' 사건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아이의 가방에서 발견된 담배나 피임도구,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액이 아이의 계좌에 입금된 내역 등이 소명자료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 숫자들 뒤에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들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폭력으로는 아이를 구할 수 없다

소년재판 현장에서 가장 안타깝게 목격하는 장면 중 하나는 아동학대와 소년비행이 뒤엉킨 사건들이다. 사춘기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체벌을 가한 부모, 그에 맞서 부모를 폭행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아이. 이 악순환이 계속되어 이어지면 부모는 아동학대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존속폭행의 피해자가 되고, 아이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역할 혼돈이 있을까. 훈육이라는 이름의 체벌은 점차 강도가 높아지고, 이에 대한 반항 역시 격화되면서 결국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체벌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내성'이다. 아이들은 반복적인 체벌에 점점 무뎌진다. 처음엔 회초리 한 대에 울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때 부모는 더 강한 수위의 물리적 제재를 쓰게 되고, 결국 훈육 목적이었던 체벌은 선을 넘어 심각한 아동폭력으로 변질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폭력의 유산이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성장 후 타인을 향한 폭행, 협박, 학대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이거나, 반대로 자해와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비행소년의 가정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력적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의 상당수가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 한 번의 폭행이 아이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훈육을 위한 체벌'을 행하기 전에 그 체벌이 가져올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가 부모 대신 나설 때 — 보호자 통고의 지혜

그렇다면 아이와 대화도 통하지 않고 체벌도 대안이 될 수 없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문제를 가정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녀가 반복적으로 비행을 저지르고 대화와 설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라면 보호자 통고를 통해 공적 개입을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처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예방하고 아이의 삶을 바로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다. 즉 자녀가 범죄나 비행을 반복하면서 어떤 설득에도 귀를 닫고 있다면 부모가 직접 가정법원에 통고해 소년재판을 받게 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소년재판 = 소년원'이라는 오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년재판을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소년분류심사원이나 소년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사안의 경중과 아이의 상황에 따라 보호자 위탁, 상담, 사회봉사 등 다양한 처분이 내려진다. 실제로 필자가 가정법원에 근무할 때 보호자 통고를 통해 소년이 조사와 법정 심리를 거치며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법정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이건 진심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때의 신호는 처벌의 공포보다는 국가기관의 개입이 주는 현실적 무게감이다. 이러한 개입은 부모의 분노 섞인 체벌보다 때로는 훨씬 효과적이다.

국친사상(國親思想) — 국가가 부모가 되는 순간

소년재판의 철학적 뿌리에는 '국친사상(國親思想, Parens Patriae)'이 있다. 적절한 보호와 양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년에 대해 국가가 부모 역할을 대신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아이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가정이다. 부모의 따뜻한 관심과 일관된 훈육, 그리고 신뢰가 그 어떤 제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가정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다하고 싶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국가가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프로세스다. 소년재판의 과정과 처분은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회의 선언이자 국가가 함께 그 길을 찾아주겠다는 약속의 징표이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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