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체질인 사내에게는 돼지고기가 약이었다

파이낸셜뉴스       2026.04.25 06:00   수정 : 2026.04.25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타고난 체질에 화가 많아 시원한 것을 좋아하고 더운 것을 싫어했다.

여름이면 늘 찬물로 땀을 씻어 냈고, 가을이 되어도 돌바닥에 이슬을 맞으며 누워 자야 시원해하면서 잠이 들 수 있었다.

사내에게는 의원 친구가 있었는데, 이래저래 자연스럽게 의서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내는 스스로가 열이 많다고 느꼈고 평소 담화(痰火)를 앓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의서를 대충 읽고서 생지황, 목단피, 맥문동, 산치자, 과루인, 황금, 지모 등의 처방을 써 두고, 발작하면 바로 달여서 복용하곤 했다. 이들 약재는 모두 기운이 서늘하고 보음(補陰)하면서 열을 내리는 약이다. 심지어 다른 병이 생겨도 늘 이 처방을 복용했다.

또한 돼지내장과 허파에 갖은 양념을 넣어 훈둔탕(餛飩湯)을 먹고 땀이 나면 곧 나았다. 훈둔탕은 쉽게 말하면 돼지내장을 넣고 끓인 탕이다. 사내는 평소에도 훈둔탕을 즐겨 먹었는데, 몸이 안 좋으면 더더욱 찾아 일부러라도 먹었다.

사내는 어느 날 의원 친구에게 자신의 증상과 함께 평소 복용 중인 탕약, 그리고 돼지내장으로 탕을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내는 "나는 평소에 열이 많고 담화가 있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 것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구한 의서를 읽고 몇가지 약들을 섞어서 다려서 먹고 있네. 그러면 몸이 금세 회복이 된다네. 그리고 간혹 탕약을 먹으면서도 돼지고기 내장으로 탕을 자주 끓여 먹고 있는데, 그럼 몸이 더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네. 내가 잘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사내는 내심 자랑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러자 의원 친구는 정색을 하면서 "담화(痰火)를 치료하는 약은 마땅히 서늘하게 써야 하나, 자네가 열이 많다고 해서 모든 병에 한 처방만을 복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네. 만약 자네의 증상이 상한(傷寒)의 음증(陰症)이라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후부터는 삼가야 하네. 또한 탕약을 복용하면서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것은 약효를 내기 어렵네. 따라서 탕약 복용 중에는 훈둔탕 먹는 것을 중지하게나."라고 했다.

사내는 의원 친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지금까지 자신 나름대로 처방한 것도 효과가 있었고 돼지고기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여름철, 사내는 차가운 계곡물에서 며칠을 보내던 중 감기에 걸려서 오한과 발열, 몸의 통증이 있었다. 특히 몸이 으슬거리면서 오한이 심했다. 사내는 증상이 너무 심해 걱정된 나머지 의원 친구의 약방을 찾았다.

사내는 의원 친구에게 "내가 찬 계곡에서 놀다가 여름 감기를 심하게 걸린 것 같네. 온몸이 아프고 으슬거리면서 오한이 심하네."라고 하소연을 했다. 의원 친구가 진맥을 해보니 맥은 가늘고 사지는 차가웠다.

의원은 "자네는 지금 음서증(陰暑症, 일종의 냉방병)으로 냉이 심하네. 부자이중탕을 처방해야 하겠네."라고 하면서 급하게 부자이중탕 3일분을 조제해서 달여 먹게 했다. 부자이중탕은 부자, 인삼, 백출, 건강, 감초로 구성된 처방으로 한기(寒氣)를 몰아내서 비위의 양기부족을 보충하고 복통, 설사, 복냉, 사지냉증, 무기력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다음 날 사내가 다시 약방에 왔다. 의원 친구는 "아니 약이 이틀 분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 왔는가?"하고 물었다. 사내는 "자네의 처방이 효과가 없네. 더이상 먹지 않겠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원 친구는 남아 있는 처방을 억지로 복용하게 했다. 그런데 사내의 병은 도리어 더 심해졌다.

그러자 사내는 "자네가 처방한 탕약이 효과가 없으니 다시 곱창과 폐를 넣은 훈둔탕을 먹어 보려고 하네. 기운이 너무 없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 친구는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은 사기를 돕기 때문에 먹으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는가?"라며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사내는 집으로 와서 돼지고기 내장과 폐를 섞어서 훈둔탕을 끓여 먹었다. 그랬더니 땀이 나고 오히려 편안해졌다. 이어서 평소에 늘 먹어 왔던 자신의 처방을 복용하고자 했다.

사내의 집안에서 의원 친구의 의견을 알고 있었기에 그 처방만은 복용하지 말 것을 만류했다. 사내는 끝내 자신의 고집대로 복용하였다. 이상하게 사내의 병은 점차 가벼워졌고 이후에도 별 탈이 없었다.

의원 친구는 당황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이 친구는 열체질이라서 돼지고기도 약이 되고, 한사가 원인이더라도 맨날 달아 놓고 먹던 담화(痰火)를 치는 찬 약들도 문제가 없었던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의원 친구는 이번 경험을 통해서 탕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무작정 돼지고기를 끊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증(燥症)이나 열증(熱症)이 있는 체질에게는 돼지고기가 오히려 약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열체질에게는 한증이 나타나더라도 뜨거운 기운의 약을 함부로 처방하지 않았다.

예부터 의원들은 탕약을 복용할 때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했다. 돼지고기는 성질이 서늘하고 기름진 음식에 속하는데, 비위(脾胃)는 약한 경우에는 돼지고기와 같은 기름진 음식은 습(濕)과 담(痰)을 조장해서 소화기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탕약 복용 중 돼지고기를 먹으면 약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특히 습담(濕痰)이 많거나 염증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주의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는 그 자체로 약이 되기도 한다. 돼지고기는 성질이 평(平)하고 윤(潤)하여 폐와 장을 적셔 마른 기침과 변비를 완화하고, 기혈(氣血)을 보해 허약과 피로해소에 도움을 준다. 또한 진액을 보충해 갈증과 허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돼지고기는 체질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돼지고기는 열이 많고 음이 부족해 건조해지기 쉬운 소양인(少陽人)에게 비교적 잘 맞는 음식이다. 소양인은 상열감과 갈증, 피부 건조가 나타나기 쉬운데 돼지고기가 이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비위가 약하고 습담이 쌓이기 쉬운 소음인(少陰人)이나 습열이 있고 쉽게 비만해지는 태음인(太陰人)은 과식에 주의해야 한다. 만약 돼지고기만 먹으면 설사를 한다면 소음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정행헌의안(程杏軒醫案)>莊炳南兄素稟火體病治與眾不同. 炳兄稟質多火,喜涼惡熱,夏月常以冷水灌汗,露臥石地為快,素患痰火,方用生地、丹皮、麥冬、山梔、栝蔞、黃芩、知母等味,發時服之即安,乃至他病亦服此方,並食肚肺餛飩湯,汗出即解。暇時向予道及,予曰:痰火藥應用涼,若凡病守服一方,似無其理。倘屬傷寒陰證,恐其誤事,後當慎之。一日果患陰暑感證,寒熱身痛,脈細肢冷,予投以附子理中湯不應,再強服之,病反加重,堅不服藥。索食餛飩肚肺湯,予謂葷油膩邪,戒勿與食,不聽。食後得汗反安,欲服常治痰火方,家人勸阻不可,竟服之。病卻,後亦無損。予思咫尺間,人病體質之殊若此。則南北地土不同,風氣各異,其人其病又何如耶。《素問》異法方宜論,不可不玩索也。(장병남 형은 평소 화체를 타고났는데, 병을 치료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사례. 병형은 타고난 체질에 화가 많아, 시원한 것을 좋아하고 더운 것을 싫어하였다. 여름이면 늘 찬물로 땀을 씻고, 돌바닥에 이슬을 맞으며 누워 자야 시원해하였다. 평소 담화를 앓아, 생지황·단피·맥문동·산치자·과루·황금·지모 등의 약으로 처방을 써 두고, 발작하면 복용하여 곧 안정되었다. 나아가 다른 병이 생겨도 늘 이 처방을 복용하고, 또 곱창과 폐를 넣은 훈둔탕을 먹고 땀이 나면 곧 나았다. 한가할 때 나에게 이 일을 말하였기에, 내가 말하였다. "담화의 약은 마땅히 서늘하게 써야 하나, 모든 병에 한 처방만을 지켜 복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 상한의 음증이라면 그르칠까 염려되니, 이후에는 삼가야 한다." 어느 날 과연 음서 감증을 앓아 오한과 발열, 몸의 통증이 있고, 맥은 가늘고 사지는 차가웠다. 내가 부자리중탕을 투여하였으나 반응이 없었고, 다시 억지로 복용시키니 병이 도리어 더 심해졌다. 그는 끝내 약을 복용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곱창과 폐를 넣은 훈둔탕을 먹고자 하였는데, 내가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은 사기를 돕는다고 하여 먹지 말라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먹은 뒤에 땀이 나고 오히려 편안해졌다. 이어 늘 쓰던 담화 처방을 복용하려 하였고, 집안에서 만류하였으나 끝내 복용하였다.
병은 물러났고 이후에도 별 탈이 없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사람의 병과 체질의 차이가 이와 같으니, 하물며 남북의 토질이 다르고 풍기가 서로 다른 곳에서는 그 사람과 병이 또 어떠하겠는가. 소문의 이법방의론은 참으로 깊이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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