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평화 제창, 마지막까지 의연했던 영웅…114년 만에 '뤼순'서 모셔올까"
파이낸셜뉴스
2026.04.24 15:35
수정 : 2026.04.24 15:36기사원문
보훈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국회·범정부 협력체계 가동
27일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국회토론회 개최, 중·일 협력 관건
국가보훈부가 더 늦기 전에 영웅의 간절한 외침에 답하기 위해 국회, 관계 부처와 손을 잡고 범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 협력 체계를 본격 가동한다.
우선 오는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보훈부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봉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외교부·통일부가 공동 주최하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국회·범정부 추진과제 마련 국회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 정부, 학계, 전문가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이라는 국가적 과제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협력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봉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인 김성원 국회의원과 정태호 국회의원 등 60여명이 참석, 전문가의 발제와 부처 간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한다.
권오을 장관은 "안중근 의사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정확한 매장 위치를 찾고 발굴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토론회를 통해 유해발굴 추진을 위한 실질적 동력을 확보하고, 앞으로 국회·정부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도출된 전문가 의견 등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필요사항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지난 1910년 3월 26일 순국일, 순국지인 '뤼순'의 낮선 땅속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1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확한 위치는 베일에 싸여 있다. 이는 당시 일제가 안 의사의 묘소가 독립운동의 성지로 추대될 것을 우려해 매장 기록을 철저히 은폐하거나 관련 서류를 파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안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뤼순 감옥 뒤편 산야는 정식 묘역이 아니라 죄수들을 묻던 황량한 땅이었다. 당시 뤼순의 3월의 날씨는 여전히 땅이 채 녹지 않은 쌀쌀한 날씨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역사 전문가들은 중국의 '현장 발굴 허가'만큼이나 '일본 내 잠들어 있는 핵심 문서의 확보'를 발굴의 성패를 가를 요인으로 보고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관련 자료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행정 체계와 기록 문화의 특성상 매장 위치나 이송 경로가 담긴 비밀 보고서가 일본 외무성이나 방위성 사료실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범정부 협력체계가 이끌어낼 중·일 양국의 진정성 있는 자료 공개와 현장 협조도 안 의사 유해 발굴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910년 당시 뤼순 감옥 간수였던 이치카와 등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는 안 의사의 위상을 두려워해 유해를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감옥 부근에 비밀리에 매장했다. 일본 어딘가에 당시 헌병대나 감옥 행정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안중근의사숭모회나 역사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사안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