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이든 파랑이든, 먹고살게만 해주면 좋겠죠" 막차·첫차 타고 흔들리는 서민들

파이낸셜뉴스       2026.05.03 06:00   수정 : 2026.05.03 06:00기사원문
새벽을 달리는 심야버스…누군가에게는 출근하는 첫 차
"버스 덕분에 택시비 아껴요"...하루 잘 보냈다며 '토닥토닥'



막차가 끊긴 뒤에도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밤 일을 시작하러 가는 사람, 첫차를 기다려 새벽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같은 자리를 지나갔습니다. 버스 한 대와 택시비, 하루 벌이를 두고 나온 말들 속에서 서민들의 밤과 아침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이 버스 없으면 일을 못하죠."

지난달 23일 밤부터 24일 새벽까지 서울 노원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버스 한 대를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막차였고, 누군가에게는 심야 근무지로 가는 첫차였다. 밤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이 막차와 심야버스를 기다렸고, 새벽에는 이른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첫차를 탔다. 같은 정류장이었지만 시간대마다 오가는 사람들의 사정은 달랐다.

밤 11시가 넘자 시민들은 정류장 도착 안내 전광판을 여러 번 올려다봤다. 일반 시내버스 막차가 가까워지자 정류장으로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고, 휴대전화로 심야버스 노선을 다시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귀가하는 시민들 사이에는 밤 근무지로 향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한 30대 시민은 심야버스를 기다리며 "밤에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저한테는 이게 첫차"라고 말했다. 다른 승객에게는 막차를 놓친 뒤 타는 차였지만, 그에게는 일을 시작하러 가는 첫 이동 수단이었다. 그는 "이 시간에 택시를 타면 그날 일해서 버는 돈이 줄어든다"며 "조금 늦더라도 버스를 기다리는 편"이라고 했다.

막차가 아니라 첫차인 사람들




심야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는 이 시간대 승객 중 대리운전 기사와 야간 근무자, 새벽 일을 나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낮에 일하는 사람들과 시간이 반대인 분들이 많다"며 "그 사람들에게는 이 버스가 하루를 시작하는 차"라고 말했다.

정류장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교대 시간이 정해져 있어 버스를 놓치면 바로 늦는다"며 "택시를 타면 편하지만 매번 그렇게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광판에 뜬 도착 시간을 보던 그는 "이 시간에 버스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도 비슷하게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오늘 야근을 했는데) 일 끝나고 나와서 버스가 있으면 다행"이라며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했다. 심야버스는 이들에게 귀가 수단이자 다음 날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남기는 방법이었다.

심야버스 지나가고…첫차 기다리는 시민들




다음날인 24일 오전 5시. 정류장에 선 사람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늦은 귀가객은 줄었고, 첫차를 타려는 시민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빌딩에서 환경미화 일을 한다는 60대 남성은 "남들 출근하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며 "첫차 시간에 맞춰 나오는 게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경기 북부의 한 물류센터로 간다는 50대 여성은 정류장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정해진 장소까지 가야 회사 차를 탈 수 있다"며 "첫 버스가 늦으면 다음 차까지 놓칠까 봐 계속 시간을 본다"고 했다. 그에게 첫차는 목적지까지 가는 첫 번째 차이자 하루 일정을 맞추는 일종의 수단이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도 있었다. 4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편의점에서 산 음료를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밤새 일하고 나오면 다른 사람들은 출근한다"며 "같은 아침인데 누구는 끝이고 누구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좀 편했으면"…'첫·막차'에 담긴 시민들 바람




정류장에서 나온 말은 결국 생활비와 일자리로 모였다. 50대 남성은 "하루 쉬면 바로 티가 난다"고 했고, 새벽 출근길에 선 한 30대 남성은 "몸은 힘들어도 월급날이 있으니 버틴다"고 말했다. 버스 시간표를 보는 이유도 단순했다. 늦지 않게 일터에 가고, 번 돈을 택시비로 덜 쓰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운데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고도 시민들의 요구는 크지 않았다. 40대 직장인은 "누가 되든 먹고살게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도 중요하고 결국 경제적으로 사람들이 덜 불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전 6시께 한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자 기다리던 시민들이 차례로 올랐다. 밤새 일한 사람은 집으로 향했고, 이른 시간 나온 사람은 일터로 향했다. 정류장에는 잠깐 빈자리가 생겼지만 곧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시 섰다. 한 시민은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면 좋겠다"며 "일 끝나고 집에 갈 때 버스에서 잠깐 눈 붙이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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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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