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소풍·생파 다 안돼"…아무 것도 안 하는 학교의 현실
파이낸셜뉴스
2026.04.25 11:16
수정 : 2026.04.25 11:1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점심시간과 방과 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초등학생 A군은 올해부터 공을 잡지 못하게 됐다. 학교가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을 이유로 교과 외 스포츠 활동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뛰어노는 시간'마저 학교에서 사라지고 있다.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일선 학교에서는 소풍, 생일파티, 운동회까지 잇따라 축소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부모의 고소·고발이 일상화되면서 학교와 교사가 책임 부담을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제한은 단순한 활동 축소를 넘어 학생들의 관계 형성과 경쟁 경험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학교는 특정 친구만 초대하는 과정에서 따돌림 논란이 불거지자 생일파티 자제를 권고했고, 승부에 따른 위축을 우려해 '무승부 운동회'를 열거나 시상식을 생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학교 밖 활동 축소는 수치로도 뚜렷하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605곳 중 1일형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한 학교는 2023년 598곳(98.8%)에서 2025년 309곳(51.1%)으로 2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사에서도 7.2%가 모든 형태의 체험학습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답했다.
현장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가장 큰 부담으로 꼽힌다. 교사 89.6%는 체험학습 중 사고 발생 시 형사책임 부담에 불안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안전하다는 분위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학교는 스스로 활동을 접는 '방어적 운영'으로 내몰리고 있다. 체험학습과 체육활동 여부는 학교장 재량이지만, 책임이 개별 학교에 집중된 구조에서 재량은 사실상 '하지 않을 권한'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운동회마저 민원 대상이 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 운동회' 관련 소음 신고는 전국에서 350건 접수됐다. 일부 학교는 운동회 규모를 축소하거나 시간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일부 학교가 여건상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구기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며 "학교 체육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민원 대응 체계도 기관 단위로 정비해 교사 개인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아이들이 뛰놀며 협동과 배려를 배우는 체육활동은 전인교육의 중요한 기반"이라며 "운동회 소음 등에 대해 지역사회의 이해가 필요하고, 아이들의 활기찬 함성이 사라진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장의 위축이 계속될 경우 '함께 뛰고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전을 이유로 시작된 제한이 학교 교육의 본질을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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