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닝 욕심 버리고 '너클커브' 장착했다… 140km를 150km처럼 던지는 대투수의 진화

파이낸셜뉴스       2026.04.26 09:00   수정 : 2026.04.26 09:00기사원문
25일 롯데전 KBO 역사상 최초 통산 2200탈삼진 대위업
"이닝 목표 다 내려놨다" 시즌 전 고백… 세월 인정하고 '영양가'에 초점
스피드 저하 극복의 열쇠 '너클커브'… 구사율 1끌어올리며 타이밍 탈취
- 우타자 몸쪽 파고드는 인하이 슬라이더+너클커브+포심 피칭 디자인 '눈길'



[파이낸셜뉴스] "올해는 이닝에 대한 목표를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선발로 나가서 3~4이닝을 던지더라도, 정말 영양가 있게 던져서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것이 제 명확한 목표입니다."

2026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이닝 이터'의 대명사이자 KIA 타이거즈의 살아있는 전설 양현종은 덤덤하지만 묵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구속과 메커니즘의 저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에이스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억지로 이닝을 채우기보다, 짧은 이닝이라도 팀을 이기게 만드는 '순도 높은 투구'를 하겠다는 대투수의 선언. 그리고 그 다짐은 시즌 초반 마운드 위에서 완벽한 '진화'로 증명되고 있다.



양현종은 지난 2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3실점(1자책점)의 역투로 시즌 2승째를 수확했다.

무엇보다 1회초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한태양, 빅터 레이예스, 전준우를 상대로 세 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KKK)을 솎아내며 KBO리그 43년 역사상 그 누구도 밟지 못한 '통산 2200탈삼진'이라는 전인미답의 금자탑을 세웠다.

전성기 시절 150km를 훌쩍 넘기던 불같은 강속구는 이제 없다. 현재 양현종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140km대 초반에 머문다.

그런데도 리그의 강타자들이 양현종의 직구에 속수무책으로 배트를 헛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세월의 야속함을 영리함으로 덮어버린 '너클커브'와 정교한 '피칭 디자인'에 있다.



올 시즌 양현종의 레퍼토리를 분석해 보면 140km 초반대의 포심과 130km 중반대의 슬라이더, 130km 안팎의 체인지업에 이어 115~120km 사이에서 형성되는 느린 '너클커브'가 새롭게 추가됐다.

구사 비중도 약 10%에 달할 정도로 어엿한 주력 무기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구종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다. 이 너클커브는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붕괴시키는 거대한 '덫'이다.

우타자를 상대할 때 양현종은 몸쪽 깊숙이 파고드는 '인하이(In-High)' 슬라이더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아웃로우(Out-Low)' 체인지업으로 시야를 어지럽힌다. 타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시속 110km대의 폭포수 같은 너클커브를 떨어뜨려 타격 타이밍과 시선을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타자의 히팅 포인트가 무너진 바로 그 순간, 양현종은 거침없이 140km 초반대의 포심을 우타자 몸쪽에 우겨 넣는다.

느린 커브의 잔상에 갇혀 있던 타자의 체감상, 양현종의 140km 직구는 마치 150km 이상의 광속구처럼 맹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피드의 한계를 치밀한 볼 배합과 제구력으로 완벽하게 역이용한 것이다.


시즌 초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 보이지만, 양현종은 차분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2승 2패 평균자책점 3.91로 선발진의 한 축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닝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을 비워낸 자리. 그곳에는 140km의 공을 150km처럼 던지는 노련함과, KBO리그 최초 2200K라는 위대한 훈장이 새롭게 채워졌다.

물리적인 구속은 떨어졌을지언정, 마운드 위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대투수의 위압감은 예년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매섭게 빛나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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