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로 수소 만든다… AI가 단 1.2% 데이터로 찾아낸 '마법의 설계도'

파이낸셜뉴스       2026.04.27 05:56   수정 : 2026.04.27 05:56기사원문
<31>한양대 ERICA 김병현 교수
고가의 귀금속 확 줄인 '저비용·고효율' 수소 촉매 설계
수십 년 걸릴 연구를 단 몇 달 만에 AI로 풀어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무궁무진한 바닷물에서 수소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새로운 촉매 설계 비법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AI 학습을 통해 전체 데이터의 단 1.2%만으로도 비싼 귀금속을 줄인 최적의 소재 조합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한양대학교 ERICA 김병현 교수와 고려대학교 김용주 교수, 고려대학교 김광수 박사, 독일 아헨공과대학교 마태우스 볼프(Matthew J. Wolf) 박사로 구성된 국제 공동 연구팀이 수행했다.

■비싼 '맹물' 대신 '바닷물'… 에너지 값표가 바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린 수소'는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쪼개서 얻는 청정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비싼 순수한 물(담수)을 써야 했고, 이 과정을 돕는 장치에는 백금이나 이리듐 같은 고가의 귀금속이 들어가 비용 부담이 컸다.

이번 연구는 지구상에 널려 있는 바닷물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값비싼 귀금속 대신 니켈(Ni)이나 구리(Cu) 같은 비교적 저렴한 금속을 높은 비율로 섞으면서도 성능은 백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계산으로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앞으로 수소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12만 개 조합의 늪, 'AI 과외선생님'이 구했다


연구팀은 5가지 이상의 금속 원소를 정교하게 섞어 만드는 '고엔트로피 합금' 소재에 주목했다. 여러 금속을 골고루 섞을수록 각 금속이 가진 장점이 합쳐져 훨씬 뛰어난 성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조합의 수가 너무 방대해 일일이 계산해서 최적의 비율을 찾으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이 따져봐야 했던 조합만 무려 12만2500개에 달했다.

여기서 연구팀은 '능동 학습(Active Learning)' 이라는 인공지능 기법을 도입했다. AI에게 모든 데이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시키는 대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불확실하니 여기를 집중적으로 봐"라고 알려주며 핵심만 골라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마치 전교 1등 학생이 문제집 전체를 푸는 대신 틀리기 쉬운 핵심 문제만 골라 풀어 공부 시간을 단축하는 것과 같다. 연구팀은 이 방식으로 탐색과 검증을 반복하며 최적의 소재 레시피를 찾아냈다.

■단 1.2%로 완성한 레시피, 수소 경제 앞당긴다


결과는 놀라웠다. 인공지능은 12만2500개의 조합 중 단 1465개, 즉 전체의 1.2%만 확인하고도 최적의 촉매 설계도를 그려냈다. 기존 방식보다 계산 과정을 무려 98.8%나 줄인 것이다.

AI가 찾아낸 레시피는 구체적이다. 물을 전기로 쪼갤 때는 양쪽에 서로 다른 전극이 필요한데, AI는 양쪽 모두의 최적 조합을 동시에 찾아냈다. 산소가 만들어지는 쪽(+극)에는 구리(Cu)를 많이 넣은 합금이, 수소가 모이는 쪽(-극)에는 니켈(Ni)을 많이 넣은 합금이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특히 구리 고함량 합금은 바닷물 속 염소가 엉뚱한 방향으로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확인한 결과가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결과인 만큼, 앞으로 실제로 합금을 만들고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러나 AI가 수십 년치 계산을 단번에 해내며 '저비용·고효율' 수소 생산의 열쇠를 찾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양한 에너지 소재 개발에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 결과는 화학공학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발표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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