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너머, 삶을 채우는 예술
파이낸셜뉴스
2026.04.27 18:41
수정 : 2026.04.27 18:53기사원문
지휘자의 절제된 섬세함과 카리스마, 우아하고 정교한 첼로의 선율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음악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 감각을 충분히 열어 받아들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득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다 곧 그만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음악·미술·체육, 이른바 '음미체'는 입시와 거리가 먼 과목으로 여겨졌다. 미술시간에 문제집을 풀고, 체육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이들이 말한다. 결국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국영수만이 아니라 음미체였다고. 학창 시절 예술을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깊이 접했더라면 삶을 바라보는 감각 또한 한층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은 경직된 이성에 유연함을 불어넣는 촉매이기도 하다. 역사적 성취를 남긴 과학자들 가운데 예술을 깊이 향유한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켜며 상대성 이론의 실마리를 찾았고, 양자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는 수준급 피아니스트였다. 리처드 파인먼 또한 봉고 연주를 즐기며 예술적 감각을 삶의 일부로 삼았다. 이들에게 예술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또 하나의 탐구 방식이었다.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는 음악이 인간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드문 자극이라고 말한다. 그가 관찰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얼굴조차 잊었지만, 젊은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흐르는 순간 눈빛을 되찾았다. 음악은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붙들어 주는 마지막 언어였던 셈이다. 미술 역시 다르지 않다.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는 연구가 있으며,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겪는 이들에게 미술관 관람을 권하는 사회적 처방을 제도화한 나라도 있다.
이제 예술 교육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소수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반복해서 경험해야 할 기본 교육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어릴 때 예술을 충분히 접한 사람은 음악 한 곡에서 위로를 얻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스스로 삶을 채우는 힘을 기른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만큼이나 낯선 감정 앞에 머무르고, 타인의 슬픔과 기쁨을 상상하는 힘 또한 중요하다. 예술은 바로 그 힘을 길러준다. 우리 아이들이 국영수만큼이나 예술을 삶의 중요한 토대로 삼아 더 깊고 넓은 세계를 품으며 성장해 가기를 기대한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 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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