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공장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했다
파이낸셜뉴스
2026.04.28 09:14
수정 : 2026.04.28 09:14기사원문
<32>건국대 박기수 교수팀
DNA 플랩 구조 이용한 제어 기술 세계 최초 개발
단백질 없이 서열 설계만으로 RNA 생성 제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약 배달하는 '스마트 스위치'… 진단부터 치료까지
이 기술은 아주 정교한 '유전자 스위치'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기 위해 복잡한 단백질이나 화학 약품을 써야 했지만, 이제는 DNA 설계도에 짧은 조각 하나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조절이 가능하다.
■3개의 염기가 만든 '방지턱'… 유전자 공장을 멈추다
연구팀은 RNA를 만드는 공장인 '효소'의 길목에 '플랩(Flap)'이라는 방해물을 설치했다. 이는 매끄러운 고속도로 위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과속방지턱'과 같다.
연구팀은 이 방해물의 '성분'에 따라 억제 효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 중 시토신(C)을 단 3개만 이어 붙여도 RNA 공장의 가동률이 절반 이하(50% 이상 억제)로 뚝 떨어졌다. 반면 다른 종류의 염기를 썼을 때는 효소가 방해물을 쉽게 무시하고 지나갔다. 특정 염기 서열을 아주 정밀하게 배치해야만 유전자 공장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청소기처럼 치우고, 자물쇠로 잠그고
연구팀은 이 '과속방지턱' 원리를 응용해 상황에 맞게 작동하는 두 가지 제어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D-FIT' 방식은 특정 효소가 청소기처럼 방해물을 잘라내면, 멈춰있던 RNA 공장이 즉시 다시 가동(100% 회복)되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M-FIT' 방식은 일종의 '범인 검거용 자물쇠'다. 평소에는 가동을 멈추고 있다가, 오직 목표로 하는 바이러스 유전자가 나타나 자물쇠를 풀어줘야만 RNA 생성이 시작된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장치 없이 DNA 설계만으로 생명 현상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제 학술지 'Angewandte Chemie'의 표지를 장식한 이 기술은 미래의 맞춤형 바이오 의료 기술을 지탱할 든든한 뿌리가 될 것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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