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다시 살리려면
파이낸셜뉴스
2026.04.28 18:47
수정 : 2026.04.28 18:53기사원문
中 속도와 규모의 경제 앞세워
韓 기술적 우위 따돌리며 질주
정부 규제완화·세제지원 넘어
전략적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기업은 中이 따라오기 어려운
초격차 기술로 시장 선점해야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격차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산업 주도권이 이동하고 있다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제조업은 그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였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한국은 기술적 우위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특정 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술 단일요소의 우위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산업 경쟁의 중심이 '기술 우열'에서 '생태계 완성도'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업 중심의 분산된 경쟁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는 효율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장점이 있지만, 국가 차원의 총력전이 벌어지는 현재의 산업 환경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자원 확보, 대규모 투자, 공급망 재편과 같은 영역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정부의 역할 재정립이 불가피하다. 단순한 규제완화나 세제 지원을 넘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보조금, 핵심 자원의 안정적 확보,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 등 더 공격적인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 기업의 자율적 혁신만으로는 현재의 속도 경쟁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전략의 전환이 요구된다. 범용제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 그 대신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초격차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차세대 반도체, 고부가가치 배터리, 첨단 인프라와 같은 영역에서 기술장벽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국제협력 역시 중요한 변수다. 미중 갈등으로 기술 생태계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신뢰할 수 있는 기술 파트너로서의 위치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유럽·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동맹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고신뢰'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은 많지 않다. 산업 전반을 놓고 볼 때 앞으로 3~5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현재 일부 분야에서 유지하고 있는 기술우위 역시 구조적 경쟁력이 아니라 외부환경에 따른 일시적 우위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 액정표시장치(LCD)와 가전 산업에서 경험했듯이 규모와 속도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시장은 빠르게 재편된다.
한국 제조업은 여전히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강점이 지속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하기 어렵다. 위기를 직시하고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실행할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산업지형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분기점이다.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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