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의 원조는 식해… 발효의 시간이 만든 산미가 진짜 맛
파이낸셜뉴스
2026.04.28 18:47
수정 : 2026.04.28 21:14기사원문
(10) 스시, 초밥, 식해
고기·생선 소금에 절여 만든 음식
8세기 '히시오'가 스시로 안착돼
에도 때 발효 생략하며 식초 첨가
니기리즈시는 상술이 빚어낸 짝퉁
발효에 의한 산미·감미 사라지고
와사비·간장 곁들인 생선 맛으로
'무경계 시대' 스시도 국경 넘어야
산미와 감미 되찾은 '시캐스시'
지구촌 한류로 자리잡기 권한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선사시대의 학문을 꼽으라면, 단연코 '별의 학문'(星學)이다. 그리스어로 별인 '아스타'(asta)를 이어받은 단어가 '아스트로노미'(천문학)다. 동일한 역사적 궤적을 이어왔지만, 근자에 학문의 모습을 갖추려는 '가스트로노미'가 있는데, 그리스어의 '가스타'(gasta)는 위를 말한다.
'위학'(胃學)이다. 프랑스어 '구루메'(식도락)도 '가스타'에서 왔다. 달 왕복을 성취한 성학의 업적을 보면서, 위학 진화의 현재를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인간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문명론적 환상은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 과정에 상수로 역할했던 자연에 대한 진중하고 겸허한 인식이 인간의 앞날에 빛을 제공한다는 믿음이 있다. 성학에 기여한 거대한 우주의 인력이라는 대전제를 생각한다면, 위학에 기여한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역할에 가없는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 오만이 초래할 엉망진창의 미래가 염려된다.
지구촌 식도락 톱리스트에 올라 있는 일본발 음식이 '스시'이며, 역동적 분위기를 창출하는 회전스시의 등장이 식도락의 저변까지 장악했다. 현재진행형 'K푸드'의 수준이 그 차원을 따라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스시는 전 지구적 브랜드가 되어 있는 일본문화다. 전국의 스시들을 일별해 분석한 전문서적은 아오모리에서부터 카고시마까지 45군데 지방의 선수들을 소개한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제외되었다. 스시의 분포로 보아도, 양쪽은 일본문화에 속하지 않는다. 인류학적으로도 그렇다.
스시를 한자로 적은 사례들로는 어장 지(지), 생선젓 자(자), 육장 해(해), 수사(壽司) 등이 있다. 마지막 것은 발음용이고, 의미상으로는 전자의 세 가지가 해당된다. 고문서에서는 해를 '니쿠히시오'와 '시시히시호'라고 읽었고, 8세기의 율령인 '요로레이'는 니쿠히시오가 육고기나 생선을 소금에 절인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주를 달았다.
중국 귀주성의 동족(동族)에서는 논에서 잡은 잉어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찹쌀과 섞어 발효시킨 식해(食해)를 만든다. 함경도가 고향인 우리집에서는 가자미식해가 별식이었다. 스시와 식해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식품이다. 탄수화물에서 나오는 포도당이 단백질과 만나면서 유산발효라는 과정이 생성되는 원리다. 따라서 스시의 원조는 식해이고, 8세기의 히시오가 스시로 안착되었음도 알 수 있다.
음식인류학의 대가인 이시게 나오미치의 '어장과 나레즈시의 연구'(1990년)가 그것을 증명한다. 와카야마의 명물로 자리잡은 고등어 '나레즈시'는 숙성된 '혼나레'와 속성으로 만든 '하야나레'의 두 가지가 있다. 만드는 방식으로 보면, 나레즈시는 눌러서 숙성시키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오시즈시'라고 한다. 아내는 혼나레의 냄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그것보다 한 수 위인 비와호의 붕어로 만든 '후나즈시'는 그야말로 '썩은' 냄새에 감칠맛이 최고다.
20년 전 교토에서 만났던 가장 비싼 후나즈시는 손바닥만 한 암컷 붕어 통마리로 해서 진공팩에 담은 1만6000엔짜리였다. 수컷은 1만엔. 이렇듯, 유산균 역할이 스시의 핵심이다. '날것과 익힌 것'으로 신화를 논했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10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 포도주를 마시고 치즈를 상식했던 그가 놓친 개념이 '삭힌 것'이다. 썩은 단백질은 사람을 해치지만, 우유를 삭힌 치즈는 지중해 식단의 장수식품 목록에 있고, 돼지의 다리를 숙성시킨 쁘로슈토(하몬)와 포도주도 한몫을 한다. 빵도 사실은 발효식품이다.
스시의 원조는 '카미가타후'(上方風)에서 찾아야 한다. 카미가타란 말은 지방에도 계급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서 천황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기에, 교토를 중심으로 오사카를 포함한다. 스시가 밥인 오사카에서는 양이 많고, 도쿄에서는 스시가 안주이기 때문에 주객 앞에서 주무르는 손가락 놀림이 한몫을 한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스시의 원조는 '에도마에노니기리즈시'(江戶前の握り지)로서 주무른 초밥 위에 생선 조각을 얹은 것이다. 산미를 대신해 밥에 식초를 첨가함으로써, 시간이 소요되는 발효 과정을 생략했다. 성급한 에도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방식의 창안은 1810년이었고, 주인공은 아사쿠사 쿠라마에의 하나야요헤에(華屋與兵衛)였다. 산미를 살리기 위해서 유산에서 초산으로 전환했고, 손님 앞에서 초밥을 주물러서 만든다. 그래서 스시는 패스트푸드라고 말하지만, 카미가타후 나레즈시의 입장에서 보면, 니기리즈시는 전통 기만의 상술이 빚어낸 짝퉁이다. 스시의 핵심이 발효에 있음을 확인하면, 글로벌 유행의 회전스시는 산미도 사라지고 모양새만 전통을 흉내낸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스시라는 이름만 빌렸을 뿐, 발효에 의한 산미와 감미가 복합된 스시 맛은 사라지고 와사비와 간장을 곁들인 생선 맛으로 먹게 되었다. 발효에 의한 산미를 강조한 '초밥'이란 이름조차도 배신했다.
나레즈시는 주무르면 형체가 뒤죽박죽이 된다. 니기리즈시의 또 다른 포인트는 손님 앞에서 입안에 들어갈 밥을 주무른다는 연희적 행위의 첨가다. 환언하면, 니기리즈시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새로운 미각을 자극하기 위하여 포괄적인 오감을 겨냥하는 방식의 문화창조라는 측면에서 성공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는 전통을 계승하기도 하지만, 전통 배신에 의한 창조의 면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시와 식해, 본질적으론 동일한 식품
과학주의를 주창하면서 이화학연구소장과 동경제대 물리학 교수로서 제국일본의 원자폭탄 계획에도 참여했던 탁월한 과학자 오오코우치 마사토시가 수가모 형무소의 전범 생활을 마치고 나온 직후에 간행했던 수필집이 '미각'(味覺, 1947년)이다. 형무소의 콩밥 메뉴에는 스시가 없었던 모양이다. 첨단과학의 미해결 과제였던 미각이 미래과학의 주제라고 생각했던 오오코우치 후예들이 가야 할 종착점이 미각과 후각을 장착한 인공지능(AI)일 것이다. 성학과 위학이 한통속으로 돌아가는 무경계 충격의 AI시대가 도래하는 마당에 '일본 따로, 한국 따로'라는 케케묵은 일국중심주의는 날개 없이 추락한다. 스시가 진화해야 할 향방의 틈새가 여기에 있다. 발효 산미의 자리를 와사비에 내어준 에도마에류에 대항할 카미가타후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스시의 원점인 식해에 답이 있다. 유산균 공양으로, 산미와 감미를 회복한 '시캐스시'가 지구촌 한류에 자리 잡기를 권한다. 나레즈시도 아니고 니기리즈시도 아닌 시캐스시를 말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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