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금융 현장 안착이 어려운 이유
파이낸셜뉴스
2026.04.29 18:41
수정 : 2026.04.29 18:41기사원문
AI는 단순한 기술도입이 아니라
조직·시스템 등 함께 바꿔야 작동
금융은 오류 나면 바로 민원·제재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예측 못하는 위험에 '세이프 하버'
소비자 피해엔 책임 명확히 해야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화려한 발표와 달리 실제 업무에 깊숙이 들어와 성과를 내는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많은 금융회사에서 AI는 여전히 '파일럿'이고, '실험'이며, 때로는 '보고서용 기술'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의사결정 방식을 함께 바꾸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원래 사일로 구조가 강하다. 개인금융, 기업금융, 카드, 보험, 자산관리, 리스크, 준법, 정보기술(IT)이 각각의 핵심성과지표(KPI)와 책임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조직은 분절돼 있는데 AI는 통합을 요구하니, 프로젝트가 부서 단위 개념증명(PoC)에서 멈추는 일이 반복된다.
문화적 장벽도 작지 않다. 금융은 본질적으로 사고의 비용이 큰 산업이다. 오류가 나면 곧바로 민원과 제재, 내부 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성공의 보상은 작고, 실패의 책임은 크니 현장은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신용평가, 보험료 산정, 투자권유처럼 설명 책임이 필요한 영역일수록 "왜 이런 판단이 나왔는가"를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 AI 활용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금융회사 스스로 AI를 'IT 프로젝트'가 아니라 '경영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 AI 전담조직 하나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데이터 거버넌스를 전사 차원에서 재정비하고, 부서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며, 핵심 프로세스를 AI 친화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파일럿을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심사·정산·사후관리·고객응대처럼 효과가 분명한 영역부터 업무 흐름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AI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AI에 맞게 프로세스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인사와 보상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실패에 대한 책임만 크게 묻고, 성공에 대한 보상은 미미한 구조에서는 어느 조직도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없다. AI 도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학습의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현업 인력을 재교육해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의사결정하는 사람'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앞으로 금융의 경쟁력은 모델을 누가 더 많이 보유했느냐보다 그 모델을 조직 속에서 얼마나 잘 작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의 역할은 더욱 결정적이다. 지금의 사전적·포지티브 규제 체계, 즉 허용된 것만 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당국의 해석과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면 시장의 실험과 학습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AI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기술 영역에서 이 구조는 혁신을 늦추는 수준을 넘어 국가 금융 경쟁력 자체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이제는 사전 금지 중심에서 원칙 중심, 위험 기반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을 일률적으로 막을 것인지보다 어떤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규제를 풀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한 규제가 필요하다. 금융회사들이 합리적 기준을 지키며 AI를 도입했다면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묻지 않는 '세이프 하버'가 필요하고, 반대로 소비자 피해·차별·정보유출 같은 중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AI는 이미 도입됐다. 문제는 기술의 존재가 아니라 활용의 수준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언이 아니라 조직을 바꾸고 데이터를 연결하고 규제 방식을 바꾸는 실질적 전환이다. AI 시대에 뒤처지는 금융회사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뀐 기술에 맞게 스스로를 바꾸지 못해서 뒤처질 것이다. 금융혁신의 승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준비된 조직과 열린 제도에서 갈린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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