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베르디 첫 국내 개인전...드로잉, 조각, 설치 등 대규모 전시

파이낸셜뉴스       2026.04.30 14:47   수정 : 2026.04.30 14:4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유스컬처를 상징하는 일본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디(VERDY)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이 막을 올렸다. 패션과 음악, 스트리트 문화를 넘나들며 국내외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의 주목을 받아온 베르디는 자신의 시각 언어를 드로잉·그래픽·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술관으로 확장한다.

롯데문화재단은 오는 7월 19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베르디의 개인전 '아이 빌리브 인 미(I Believe in Me)'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크레용 드로잉 100여점, 대형 입체 신작 24점, 네온 작품 등 총 250여점을 통해 베르디의 그래픽 언어가 조각과 설치, 공간 경험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조망한다.

베르디는 일본 오사카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로, 1990년대 일본 우라하라 문화와 하드코어 펑크록,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그래픽 세계를 구축해왔다. 지난 2008년 디자인 컬렉티브 'VK 디자인 웍스(DESIGN WORKS)'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패션, 음악, 미술, 스트리트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대 청년 문화의 감수성을 시각화해왔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에는 글로벌 협업이 큰 역할을 했다. 나이키, 겐조, 버드와이저 등 브랜드 프로젝트를 비롯해 무라카미 다카시 등 동시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이어왔고, 블랙핑크 월드투어 아트 디렉팅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휴먼메이드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로 활동하며, 그래픽 디자인을 상업 플랫폼과 대중문화, 동시대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이번 전시 제목 '아이 빌리브 인 미'는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도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어온 그의 태도를 압축한다. 베르디의 작업은 화려한 이미지보다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의 문장에 가깝다.

가까운 이에게 건넨 위로에서 출발한 '걸스 돈트 크라이(Girls Don't Cry)', 무명 시절을 돌아보며 얻은 깨달음에서 탄생한 '웨이스티드 유스(Wasted Youth)'는 그의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다. 손으로 그린 글씨에서 시작된 이 문구들은 티셔츠와 포스터, 그래픽 작업을 거치며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감정의 언어가 됐다.

전시장 초입에는 베르디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빅(Vick)'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판다와 토끼의 형상을 섞은 듯한 이 캐릭터는 둥근 눈과 부드러운 몸집을 지녔지만, 가슴에는 펑크 문화의 반항성을 상징하는 아나키 문양을 품고 있다. 귀여움과 저항, 장난스러움과 쓸쓸함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이 캐릭터는 베르디가 청춘의 불안과 자기 고백을 시각화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섹션 '빅'에서는 빅을 소재로 한 크레용 드로잉과 실크스크린, 대형 캔버스 신작, 네온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 즉흥적인 선과 색채로 구성된 드로잉은 완성된 그래픽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흔적을 보여준다. 전시장 한쪽 벽을 캔버스 삼아 완성한 대형 월페인팅은 캐릭터가 평면 이미지를 넘어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팬데믹 시기에 탄생한 '비스티(Visty)'는 이와 다른 정서를 품는다. 파스텔빛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구현된 비스티는 불안한 시기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캐릭터다. 전시장 중앙 벽을 채운 가로 7m 규모의 부조 작품은 그래픽 이미지가 평면을 벗어나 조각과 설치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 '아이 빌리브 인 미'에서는 비스티와 함께 서로 다른 표정과 형태를 지닌 빅 조각 18점이 배치된다. 관람객은 조각 사이를 이동하며 캐릭터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베르디의 그래픽은 단순히 보는 이미지가 아닌 관람객의 동선과 신체 감각을 통해 경험되는 공간적 존재로 전환된다.

세 번째 섹션 '웨이스티드 유스'는 베르디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타이포그래피와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흑백으로 구성된 타이포그래피 작품은 화려한 이미지 대신 문장의 밀도와 물성에 집중하게 한다. 네온으로 구현된 문구들은 거리의 구호처럼 전시장 안에서 다시 울린다. 이 섹션은 그래픽 디자인이 단순한 이미지 생산을 넘어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마지막 섹션 '더 스튜디오(The Studio)'는 도쿄에 있는 베르디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이다. 앞선 섹션들이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줬다면 이곳은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환경과 과정을 드러낸다. 협업 프로젝트 아이템, 포스터, 피규어, 개인 소장품, 드로잉, 스케치, 작업 도구 등이 놓인 공간은 아이디어가 축적되고 수정되며 변형되는 창작의 현장을 보여준다. 동시에 베르디의 작업이 개인의 독립적 생산물이라기보다 협업과 커뮤니티,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왔음을 환기한다.

전시는 베르디를 단순한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을 감정과 정체성을 동시대의 시각 언어로 번역해온 예술적 실천으로 다시 읽는다. 거리와 브랜드, 대중문화의 문법 속에서 유통되던 이미지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베르디는 이번 전시에 대해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들을 표현한 자리"라며 "관람객들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을 찾듯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를 즐겨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전시 오디오 가이드는 배우 박서준이 참여했으며, 전시 기간 중 베르디가 함께하는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과 아티스트 토크 등도 마련됐다. 스트리트 문화의 감각을 미술관의 언어로 옮긴 이번 전시는 그래픽이 하나의 소비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세대의 감정과 태도를 담는 예술적 형식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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