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법정의 무게

파이낸셜뉴스       2026.05.04 09:00   수정 : 2026.05.04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내가 근무했던 수원가정법원은 한때 동수원 등기소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법원이라기보다 어쩌면 그곳은 '법원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공간'에 가까웠다.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좁은 건물 안으로 비행소년들과 그들의 보호자들 그리고 보조인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법정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때로 재판의 무게보다 공간의 혼잡함을 먼저 느껴야 했다.

더 잊히지 않는 장면도 있다. 오전 재판을 하면서 내가 6호 처분이나 소년원 처분을 내렸던 비행소년을 점심시간에 다시 마주치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 비행소년들은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내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어색하게 공유하게 되었다. 나를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소년들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피하는 소년들도 있었다. 이렇듯 소년부 판사와 비행소년의 동선조차 분리되지 못한 그 건물은 오랜 시간 동안 법원 청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위와 질서를 확보하지 못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건물 밖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소년들, 법원 주변을 서성이며 친구의 재판을 '응원'하는 무리들. 그 모습은 법원의 풍경이라기보다 시장 한복판의 소란에 가까웠다. 소년재판이 있던 날이면 법정 안팎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청원경찰 한 분께서 혼자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비행소년들과 그 주변 친구들을 단속하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 법정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법원이 주는 권위와 무게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유지되던 수원가정법원이 2021년 봄 새로운 청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10층 규모의 단정하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당연히 호송차량의 출입구는 분리되었고, 위탁될 소년들과 위탁된 상태로 재판을 받는 소년들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조용히 호송되었다. 사람의 흐름이 정리되자 공간의 질서가 생겼고, 질서가 자리 잡자 비로소 법원이 가져야 할 참모습이 드러났다.

신기하게도 그 변화는 단지 구조에만 머물지 않았다. 법정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들의 말투가 조심스러워졌고, 공간을 대하는 마음에 미묘한 긴장감도 생긴 듯했다. 또한 법원 청사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친구의 재판을 응원한다는 핑계로 법정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는 소년들도 없어졌다. 아마도 재판 당사자들은 공간을 통해 권위를 느끼고 그 권위 앞에서 자신을 조율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판사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곤 했다. 건물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법의 무게를 담아내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가끔 옛 청사를 떠올리곤 했다. 매우 불편했고 비좁았으며 때로는 어수선했지만 그곳에는 물리적·정서적 가까움이 있었다. 판사실과 법정 사이의 짧은 거리, 직원들과 수시로 얼굴을 마주하며 쌓이던 관계, 손에서 손으로 빠르게 전달되던 기록들, 효율과 온기가 공존하던 그 공간에는 새 청사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인간적인 결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공간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었다. 한 번은 점심을 먹으러 법원 청사를 나서던 길에 내가 예전에 6호 처분을 내렸던 한 소년을 우연히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집행 감독 차원에서 시설을 방문했을 때 그 소년의 내재적 변화를 직접 확인하였기에 나는 그 소년이 시설 퇴소 후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예전의 웃음을 찾고, 가족들과 시간을 주로 보내며, 조금씩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소년은 내 예상과 달리 법원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다른 소년의 재판을 보러 온 듯했고, 옆에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며, 얼굴에 립스틱 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소년을 불러 다시는 이곳 근처를 맴돌지 말라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길게 얘기하지는 못했는데 당시 마음속으로 그 소년을 다시 법정에서 볼 것 같은 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은 적이 많다. 그 소년은 몇 달 뒤에 다시 내 법정에 서 있었고 나는 그 소년을 장기로 소년원(10호)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웅장하고 권위 있는 건물, 완벽한 동선 관리, 엄격한 집행 감독이 이루어진다 해도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법원이나 소년부 판사는 일단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삶 자체를 그 방향으로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소년재판은 때론 큰 보람을 안겨주었다. 한 소년의 삶이 나의 처분과 관리로 인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처분이 특정 소년에게 별다른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 해당 소년을 다시 법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 느끼는 자책감의 무게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단 한 명의 소년이라도 비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계속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소년재판이 진행되는 법원은 계속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건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마지막 경계로서.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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