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는 시대정신
파이낸셜뉴스
2026.05.04 18:34
수정 : 2026.05.04 18:34기사원문
광화문 한자·한글 '쌍현판' 달자
문체부, 올들어 본격적 공론화
"문화주권" vs "역사왜곡" 논란
현 현판 세종 때 원형 아니라면
한류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문화유산 한글을 부각할 필요
이후 전문가 토론회와 문체부 누리집 의견 게시판 등 공론장에서 찬반 논쟁이 팽팽했다. 국가 문화 상징물의 이름표를 고치려는 터에 어찌 진통이 없겠나. 김춘수 시인은 한 떨기 '꽃'을 호명하면서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심오한 뜻을 부여했으니….
광화문은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다. 조선 500년은 물론 근현대사의 영욕이 교차하면서 소실과 복원이 되풀이됐던 문화재다. 현판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만도 세 차례 바뀌어 걸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친필 한글 현판을 달았다. 일제가 훼손하고 6·25전쟁 때 목재 문루와 현판이 불탄 광화문을 이전해 개건하면서다. 당시 큰 흐름을 타던 '한글 전용화' 정책과 맥이 닿아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문화유산=원형 복원'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과 한글 현판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다. 이재명 정부가 공론화를 시작한 한글 현판 추가 설치는,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최 장관이 "한글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재 원형을 지키려는 정신에 더해 한글이라는 시대적 요구도 포용할 수 있다"고 한 그대로다.
그러나 이 '쌍현판' 설치안을 놓고도 찬반 논란이 여전하다. 지난 3월 31일 문체부 주최 토론회에서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국가의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행위"라고 역설했다. 반면 한글 간판 반대 측은 "역사를 왜곡하고, 옛 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강민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한자 현판에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 표기에 불과하다"고 해석했다.
이런 시각차를 좁히긴 쉽지 않아 보인다. 문화유산은 원형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도 맞고, 국가 상징공간에 한글 현판으로 정체성을 입히는 게 시대정신이란 주장도 설득력이 커서다. 공론화가 숙의민주주의의 전범으로 결실을 맺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필자는 몇 가지 관점에서 '쌍현판' 추진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우선 '1865년 임태영 글씨'를 광화문 현판의 복원 기준으로 고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경복궁 자체도 조선 태조 때 건축됐고, 광화문이란 이름도 세종 때 명명됐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돼 270여년 폐허로 방치됐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했다. 그래서 광화문 현판의 진짜 원형이 뭔지 아리송하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 자금성의 현판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만주족이 세운 청은 한족 왕조인 명을 멸했지만. 궁궐은 그대로 활용했다. 그 대신 황제가 머무르던 전각의 현판엔 건청문(乾淸門)이란 한자와 만주어 글씨를 병기해 정체성을 살렸다. 이 현판은 지금도 명청 교체기의 중국 문화사를 증언하고 있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박제된 유물을 넘어 시대정신에 맞춰 재해석할 때 문화유산의 생명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E H 카)라는 경구의 함의처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광장의 '유리 피라미드'가 그 방증이다. 1981년 이를 세울 때 '문화 파괴'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결국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사란 평가도 받고 있다.
광화문 광장은 과거 유산을 넘어 이제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표상이다. 지난 3월 방탄소년단(BTS) 공연은 지구촌에 이를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쌍현판은 그간 가려진 문화 정체성의 뿌리를 드러내는 일일 듯싶다.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훈민정음 글꼴 현판을 새로 달 경우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나 자금성 건청문 사례에 견줘 명분도 훨씬 크다. 세종 시절 광화문 현판의 원형은 사라졌지만, 그가 창제한 문화유산 훈민정음이 한류의 발원지에서 '부활'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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