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와 다이소
파이낸셜뉴스
2026.05.04 18:37
수정 : 2026.05.04 19:35기사원문
소비시장의 중추였던 중가(범용) 영역은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단순한 경기순환의 결과가 아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소비구조 자체가 해체되고 재편되는 현상이다.
소비 양극화의 풍경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은 커피 시장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프리미엄 커피 시장에서 독주 중이다. 지난해 매출 3조2380억원, 영업이익 1730억원을 달성했다.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3조원대 매출을 찍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대척점에서는 가성비를 무기로 한 초저가 브랜드들이 득세하고 있다. 메가커피 운영사인 MGC글로벌은 지난해 매출 646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4959억원) 대비 30.4%라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도 1113억원으로 전년(1076억원) 대비 3.5% 증가했다. 반면 두 절벽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은 중가 브랜드들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지난해 매출 2387억원으로 전년보다 1.4% 역성장했다. 커피빈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매출 1435억원으로 6.1% 뒷걸음쳤다. 커피 시장은 정체성이 애매한 브랜드들이 밀려나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구조다.
그러나 소비시장은 실질구매력과 달리 움직이고 있다. 가계의 지갑은 얇아졌는데 명품 매출은 고공행진이다.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실적은 압도적이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8543억원, 영업이익 5256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 대비 6.1%, 35.1% 성장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매출이 16.7% 증가한 1조1250억원으로 1조원 고지를 드디어 넘었다. 영업이익도 14.6% 늘어난 3055억원에 달했다. 샤넬코리아는 작년 매출 2조130억원으로 2조원 시대를 열었다.
명품의 반대편에서는 '균일가 신화'의 다이소가 폭발적 성장세다. 다이소 매출은 2021년 2조6048억원에서 2025년 4조5363억원으로 무려 74.1%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838억원에서 4424억원으로 55.9% 늘었다. 침체에 빠진 유통업계에서 보기 힘든 성장률이다. 초저가 채널임에도 10%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소비 양극화의 실체는 무엇인가. 고물가와 소비침체기에도 소비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 소비에는 과감히 지갑을 열고 있다. 반면 일상적 지출은 극단적으로 줄이는 이분법적 소비가 굳어지고 있다. 중가제품으로 먹고살던 식품·유통 기업들도 전략적 변화 중이다. 초프리미엄과 초저가 자체브랜드(PB)의 이중 전략이 대세다.
문제는 중간지대 실종이 산업 생태계에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중가 시장은 품질혁신이 가장 활발했던 영역이다. 이 구간이 약화되면 기업은 질적 성장 대신 극단적 가격경쟁이나 이미지 소비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탕후루, 두바이초콜릿처럼 '반짝 제품'에 소비재 기업들이 매몰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소비 양극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기후 자체가 변하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다. 비싸거나 싼 것만 남은 시장에서 소비자는 다양한 가치와 품질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결국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내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가격이 아닌 '가치 제품'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의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 중간시장이 사라지는 게 걱정스러운 이유다.
cgapc@fnnews.com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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