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불속행' 겨냥한 헌재, 대법에 재판소원 1호 의견서 요청
파이낸셜뉴스
2026.05.04 18:42
수정 : 2026.05.04 18:41기사원문
법조계 오랜 논쟁거리 도마에
제도 자체에 대해선 이미 합헌
적용 적절했냐는 따져볼 여지
'재판소원' 1호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제 관심은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던 '심리불속행' 제도의 필요성과 한계로 확대되고 있다. 이 제도는 대법원이 상고 이유가 법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이유를 적지 않고 기각하는 것을 일컫는다. 법원의 업무 과중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판결 이유조차 모른 채 패소하기 때문에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선고가 순식간에 끝난다는 의미의 '10초 재판'이라고 불린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8일 녹십자가 대법원을 상대로 제기한 재판취소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대법원에 심판회부 사실을 통지하며 30일 이내의 답변 제출을 요청했다.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도 관련 통지가 전달됐다. 대법원 답변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형사사건을 제외한 민사·가사·행정 사건 상고심에서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는 경우 별도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다만 원심 판단이 대법원 판례에 상반되거나, 헌법 등 법 규정을 잘못 적용했을 경우 등에는 심리불속행이 제한된다.
이 제도 자체에 대해 헌재는 이미 합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앞선 헌법소원 사건(2006헌마551 등)에서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도록 한 규정이 신속한 사건 처리를 통해 당사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충실히 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본 바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은 서로 다른 재판 결과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심리불속행 적용이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점에서 기존 판단과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사건의 결론은 향후 재판소원 제도의 운용 방향은 물론, 대법원의 상고심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전체 법원이 기본권 측면을 점검하게 될 것"이라며 "대법원도 심리불속행 판단에 있어 한층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내부 재판소원 후속조치 연구반(TF)을 중심으로 대응한다. TF 관계자는 "이번 주 중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의견서를 제출할지 여부도 검토 대상"이라고 밝혔다. 해외 사례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등에서는 재판소원 사건의 피청구인을 법원이 아닌 별도 기관으로 보는 만큼, 우리 법제에서 소송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검토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별도 의견을 내지 않거나, 제출하더라도 일반론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고법원이 개별 판결의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제도적 측면에서 심리불속행의 필요성이나 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의 입장은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