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일 기대해도 되지?"… 넥타이 풀자마자 장난감 설명서부터 펼친 중년의 거실

파이낸셜뉴스       2026.05.04 20:01   수정 : 2026.05.04 20:46기사원문
팍팍한 현실과 얇아진 지갑의 무게를 견디며, 7살 아이의 '마법 같은 동화'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밤잠을 반납한 중년 아빠들의 숭고한 전야제.



[파이낸셜뉴스] 5월 4일 월요일 밤 10시. 평소 같으면 한 주의 시작이라는 묵직한 압박감에 소파에 쓰러져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 밤 거실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

내일은 1년 중 7살 아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자, 대한민국 모든 부모들의 최대 결전일인 '어린이날'이기 때문이다.

퇴근길, 종일반으로 운영되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내일 일정만 재차 확인했을 아이의 들뜬 얼굴이 눈에 선하다.

팍팍한 살림에 매달 나가는 교육비만 해도 허리가 휘고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하지만, 내일 하루만큼은 아이 세상의 완벽하고 전능한 영웅이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깰세라 텔레비전 볼륨을 줄이고 조심조심 거실 구석에 앉아 숨겨둔 선물을 꺼낸다. 평소의 피로를 핑계 삼아 마시던 톡 쏘는 탄산 대신 밍밍하지만 달콤한 배 음료 한 캔을 따서 목을 축이고, 복잡한 장난감 조립 설명서를 펼친다. 미국 주식 호가창을 분석하던 그 매서운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행여나 부품을 빠뜨릴까 포장지가 찢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서툰 아빠의 손길만 남았다.

◇ '마법적 사고'를 지켜주기 위한 중년의 든든한 방패


발달 심리학에서는 7세 전후의 아이들이 세상이 자신의 기대와 환상대로, 마치 마법처럼 움직인다고 믿는 것을 '마법적 사고'라고 부른다. 아빠가 사준 장난감 로봇이 진짜 세상을 구하는 무기라고 믿고, 내일 하루는 온 우주가 오직 자신을 위해 돌아간다고 굳게 믿는 그 투명한 순수함.

하지만 이 작고 연약한 마법을 지켜내기 위해 4050 가장들은 현실이라는 냉혹한 전쟁터에서 숱한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물가는 치솟고 지출할 곳은 산더미처럼 쌓여가지만, 가장들은 기꺼이 자신의 등골을 내어주며 아이의 동화 같은 세상을 지켜내는 가장 크고 단단한 방패가 되기를 자처한다.


◇ 5월 4일 밤, 당신이 조립하고 있는 것은 '아이의 우주'다


월요일의 고단함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거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포장지에 서툴게 테이프를 붙이는 아빠의 입가에는 실없는 웃음이 샌다. 내일 아침, 눈을 비비며 거실로 뛰어나와 선물을 발견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호할 7살 아들의 얼굴. 그 짧은 1초의 찰나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오늘 밤의 수고로움과 얇아진 지갑의 씁쓸함을 견딘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직장 생활과 파랗게 질린 주식 계좌에 한숨 쉬던 일상. 하지만 5월 4일 오늘 밤, 조용히 장난감을 조립하고 삐뚤빼뚤 선물을 포장하는 당신은 이미 내일 아침 아이의 거대한 우주를 창조해 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영웅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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