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집에서 살래요" 스스로 재학대 굴레 쓰는 아이들
파이낸셜뉴스
2026.05.05 18:23
수정 : 2026.05.05 18:22기사원문
현행법 원칙은 '원가정 보호'
학대 피해 아동 10명 중 8명
가해 부모 있는 집으로 돌아가
"고위험 가정 선별 관리 인력난
부모 반발에 적극 조치도 한계"
아동보호체계 재점검 목소리
#. 2022년 가을, 인천 강화군의 한 공동주택 복도를 혼자 돌아다니던 1살 남아가 발견됐다. 부모는 "잠든 줄 알고 쇼핑을 갔다"고 변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 안은 사실상 '쓰레기장'이었다.
주방에는 종량제 봉투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가 방치돼 조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즉각 분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음에도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렸고 보호자는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분리 대신 청소 지원과 복지 연계가 이뤄졌지만 보호자의 비협조 속에 현장 대응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5일 보건복지부의 '2024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사례 중 재학대 비율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간 15~1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재학대 가해자의 98%는 부모로 나타나는 등 대부분이 가정 내부에서 반복되는 폭력이었음에도 피해 아동의 82.5%가 주양육자에 의해 계속적으로 보호받는 원가정 보호 상태를 유지했다.
■가해 부모 곁으로 '재학대' 노출
실제 지난달 경기 양주시에 살던 3세 아동이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다. 경찰은 아동학대를 의심한다. 해당 가정은 이미 지난해 12월에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 부서의 '학대 정황 확인 불가' 회신 등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원가정 보호'가 원칙이다. 다만 고위험 가정에 대한 선별과 관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이처럼 재학대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인으로는 인력 부족이 지목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892명으로 1인당 연간 평균 담당 건수는 51건 꼴이다. 그러나 군·면·읍 단위 소규모 지자체의 경우 복지사업 자체가 노인 위주로 짜여 있다는 점이 함정이다. 이 때문에 매뉴얼상 2인 1조 출동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상당수 지역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1명이 사건을 맡는 구조다.
올해로 5년째 아동학대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정태영 인천 강화군청 주무관은 "여럿이 함께 대응할 경우 분리에 대한 설득이 훨씬 용이하다"며 "혼자 책임 부담과 악성 민원·신변 위협 등 외부 압박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열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인력'과 '사후 관리' 절실
보호 선택지 부족도 구조적 한계로 꼽힌다. 원가정 보호를 택하지 않을 경우 대안이 제한적인 데다 친인척 보호나 가정위탁 등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재학대 피해 아동 중 분리 보호 조치가 이뤄진 655명 가운데 588명(약 90%)이 시설에 입소했다. 이에 아이 입장에서는 학교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원가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방치 속에 살던 한 자매가 "학교에 알려지는 게 싫다"며 도움을 거부하다, 6개월 뒤 재학대 신고가 접수되고 나서야 7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은 끝에 겨우 구조되는 사례도 있다.
현장에서는 사건을 감당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인원만 늘릴 것이 아니라, 대학 교육과 채용을 연계해 전문성을 높이고 국가와 전문기관 협력으로 조사부터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보호 체계 전반에 대한 재정비 필요성도 제기된다. 신수경 변호사(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장)는 "지금처럼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집단 시설은 피해 아동 입장에서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외국처럼 개인 공간 중심의 '쉼터형 보호시설'을 확대해 일시적으로 머문다는 전제 하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