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우유에 미쳐서 한국까지 왔네요" 52개국 1875종 '초코' 마셔버린 이 남자
파이낸셜뉴스
2026.05.08 16:28
수정 : 2026.05.08 16:23기사원문
[인터뷰] '초코우유 덕후' 전세계 1875종 리뷰 쓴 페리 제임스
[파이낸셜뉴스] "초코우유에 미친 건 맞아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A Fool on a Fool's Errand)'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10년간 52개국을 누비며 1875종의 초코우유를 마시고 리뷰해온 페리 제임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를 바보라고 부르기는커녕 이토록 순수한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제임스를 알게 된 건 지난달, X(옛 트위터)의 한 한국인 이용자(@99opentabs)가 그를 소개한 글이 화제가 되면서였다. 재미있는 웹사이트들을 소개하는 이 이용자는 "초코우유에 인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1875가지 초코우유를 견문하기 위해 52개국을 여행한 집념의 사나이, 페리 제임스의 홈페이지를 소개한다"며 그에 대한 트윗을 작성했다.
한국에서도 52가지 종류의 초코우유를 마시고 갔다는 설명에 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고, 이 트윗은 475만회 이상 조회되며 1만여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그리고 제임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기자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세계를 돌며 초코우유를 마시는 남자, 제임스가 직접 전한 유별나고도 특별한 '초코우유 탐방기'를 소개한다.
크로아티아에서 싹튼 집념…1875종, 52개국, 10년의 기록
"2016년, 아내와 저는 커리어 중간에 잠시 쉬어가기로 결심하고 약 18개월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1년치를 모았는데 '럭셔리' 여행이 아니다보니, 2년을 버틸 수 있었죠. 당시 여행지 어디를 가든 저는 초코우유를 마셨고, 가끔은 초코우유 몇 팩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그해 6월 크로아티아에서 '이걸 제대로 기록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제임스는 평생 초코우유를 사랑해온 애호가였다. 2016년,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그는 방문하는 나라마다 초코우유를 찾아 마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스플리트에서 '초코우유 리뷰'를 해보자고 결심한 뒤, 사진과 맛의 평가는 물론 영어로 번역한 성분 목록까지 꼼꼼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초코우유 리뷰는 취미에서 열정으로, 또 집착으로 변했다. 여행 자체가 초코우유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의 홈페이지 '바보 같은 짓(A Fool's Errand)'이다. 제임스는 "리뷰가 500개가 됐을 때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초코우유 전문가'라고 선언했는데,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저 말고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며 웃었다.
"초코우유를 찾아 여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제가 RPG 게임에서 모든 아이템을 수집하려는 플레이어와 비슷한 강박적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새로운 초코우유 하나를 위해 편도 4시간을 운전하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가 리뷰한 초코우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1875종 이상, 52개국에 달한다. 국가별·평점별·성분별·브랜드별로 정교하게 정리된 데이터베이스는 그야말로 전 세계 초코우유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그가 초코우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단순한 '달콤함'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지역 낙농장의 크림라인 우유(비균질화 우유)에서 만들어진 초코우유를 선호하며, 4가지 재료만으로 만든 단순한 제품일수록 맛이 좋은 경향이 있다는 게 제임스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마신 52종…1위는 서울우유 디즈니 초코
"제 '목적지'라고 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초콜릿 우유를 리뷰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비현실적이죠. 그래서 목적 그 자체보다 '여정' 자체가 더 흥미롭고 변화를 주는 것 같아요. 일단 초코우유는 국가와 지역마다 강한 차이가 있어요. 중국과 동남아 일부는 유당불내증 비율이 높아 초코우유가 인기 없는 반면, 한국은 정말 즐거운 놀라움을 줬죠. 기대보다 훨씬 다양한 초코우유가 있었거든요. 초코우유 측면에서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놀라움 중 하나였습니다."
사이트의 나라별 리뷰 목록에서 한국(South Korea)은 무려 52종이 등록되어 있다. 제임스는 한국에서 단 6일 동안 체류했지만 그 사이 52종의 초코우유를 섭렵했고, 서울 편의점 100여 곳을 발로 뛰었다고 했다. 초코우유를 구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19~24㎞를 걷는 일은 예사였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가게를 돌아다니며, 매번 배낭을 가득 채워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했다"며 "아내가 가끔 짐을 들어주거나 영상 촬영을 담당해줬다"고 덧붙였다.
제임스가 한국에서 최고 평점을 준 제품은 서울우유 디즈니 초코(9점)로, 그는 이 제품에 대해 "많은 제품들이 저지방(1%)이나 부분탈지(2%)인데, 이 제품은 전유(3.25%)에 가까웠다. 지방 함량이 높을수록 맛이 좋은 경향이 있다"며 "풍미도 강하면서 균형 잡혀 있고, 약간 다크한 코코아 풍미에 점도도 마음에 들었다. 크리미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진하지 않은 균형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최하위는 팔도 초코 드링크(0.5점)였다.
제임스는 한국의 초코우유에 대해 '의도성(intention)'과 '독창성(novelty)'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앵그리버드·도라에몽·디즈니·스누피 등 캐릭터를 앞세운 어린이용 제품과 고급 디저트 같은 성인 지향 드링킹 초콜릿 제품까지 다양했다"며 "한국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의도적인 초코우유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그의 웹사이트에 올라있는 전 세계 52개국 초코우유 1875종 중 만점(10점)을 받은 제품은 68종에 불과하다. 제임스가 가장 최근 만점을 준 제품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길에 있는 페일라스 크리머리(Peila's Creamery)의 초코우유다.
당뇨 각오한 '췌장 파괴' 여정, 이제는 페이스 조절
"췌장이나 당뇨에 대한 농담을 하곤 해요. 몸매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가끔은 좀 더 건강한 취미를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케일이나 당근 스틱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그다지 재미있지 않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초코우유를 마시는 생활은 결코 건강에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제임스가 1800종 달성 기념 영상에서 "8년간의 헌신과 건강에 대한 무시"로 이 기록이 가능했다고 자조한 이유다. 하지만 제임스는 "지난 시간 동안 겪은 경험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정말 놀라운 자기 계발과 발견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라며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제임스는 현재 여행을 그만두고 다시 일상을 살고 있으며, 당분간은 해외여행 계획도 없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초코우유의 향기를 쫓아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의 여행 계획을 묻자 그는 미국 50개 주 완주에 알래스카·하와이·아칸소만 남겨놓고 있다며, 특히 알래스카 코디악 섬의 소규모 염소 낙농장에 꼭 가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오직 그곳의 초코우유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다는 말과 함께.
초코우유 한 팩에 세계를 담은 사나이의 집념은 좀처럼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초코우유를 찾는 열정만큼은 예전과 다름없다는 제임스는 "멈출 생각이 없다"며 초코우유 리뷰 2000종 달성이 다음 목표라고 밝혔다(심지어 2년 내에 달성 가능할 것 같다는 전망까지 곁들였다). 그런 제임스에게, 20년 후에도 한 손에 초코우유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냐고 묻자 그는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20년 후면 70에 가까워지는데, 그때도 분명 새로운 초코우유를 찾아 헤매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은퇴하면 밴을 사서 미국과 캐나다 농장을 돌아다니니며 초코우유 탐방을 계속하고 싶어요. 은퇴한 뒤에는 아내와 북미에서 6개월, 해외 6개월을 보내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여행도 초코우유 추구도, 체크리스트를 지울수록 오히려 리스트가 더 길어지더군요. 끊임없이 쫓지만 결코 완전히 닿을 수 없는 지평선 같은 거죠. 그러니 제 목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수많은 멋진 이야기들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후회보다 좋은 이야기가 훨씬 많으니, 생의 궁극적 목적지인 죽음도 그렇게 두렵지는 않네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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