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고 샀다가 머리 다 빠질라"...185만병 팔린 '이 샴푸', 짝퉁 비상
파이낸셜뉴스
2026.05.08 05:00
수정 : 2026.05.08 15: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K뷰티를 겨냥한 짝퉁 범죄가 이제는 매일 쓰는 '헤어케어' 시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8일 폴리페놀팩토리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말 자사의 인기 헤어케어 브랜드 '그래비티(Gravity)'의 위조품 판매자 다수를 경찰에 고발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흔히 가품이라고 하면 정가보다 반값 이상 뚝 떨어진 '미끼 상품'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저가에서 불과 2000~3000원만 슬쩍 내리는 '심리전'을 폈다. 소비자들이 "이 정도 할인율이면 비공식 유통망이어도 정품이겠지"라며 덜컥 믿고 지갑을 열도록 유도한 것이다.
겉모습도 얼핏 보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허점이 수두룩하다. 정품과 달리 용기 표면의 마감이 거칠고 라벨의 글자가 뭉개져 있거나 뜬금없는 오탈자가 발견된다. 펌프 역시 누를 때마다 조악한 티가 난다. 결정적으로 내용물을 짰을 때 투명한 정품과 달리 가품은 탁하고 탁한 색을 띠고 있어, 모발에 닿기도 전에 찝찝함을 자아낸다.
출시 2년 만에 185만 병 완판…'인기'가 부른 짝퉁의 저주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단기간에 신드롬급 인기를 끈 브랜드가 피할 수 없는 '인기의 역설'이라는 것이다.
그래비티는 KAIST 이해신 석좌교수 연구팀이 특허 기술을 갈아 넣어 만든 이른바 '과학자 샴푸'다. 475ml 한 병에 3만 8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달고도, 론칭 2년 만에 무려 185만 병이 팔려나갔다. 이마트 오픈런은 물론, 일본 라쿠텐과 아마존 등 글로벌 무대까지 휩쓸며 중고 마켓에서는 정가에 웃돈을 얹어 파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K뷰티 위조 범죄의 '영역 확장'을 의미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거 짝퉁 업자들의 주된 먹잇감은 설화수 같은 대기업 스킨케어 제품이었다. 그러다 2025년을 기점으로 마녀공장, 조선미녀 등 글로벌 대박을 터뜨린 '인디 브랜드'로 타깃을 바꾸더니, 이제는 스킨케어를 넘어 스킨케어 스타트업의 '샴푸'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스킨케어 중심이었던 위조품이 헤어케어로 번진 최초의 공식 수사 의뢰 사례다.
지난 4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수출입 지식재산권 침해 범죄 규모는 2789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64%나 폭증했다. 이 중 화장품류(36%)가 가장 많았고, 적발된 물품의 97.7%는 '중국발'이었다. 대륙에서 찍어낸 가짜 K뷰티가 국경과 품목을 가리지 않고 한국 시장을 역습하고 있는 셈이다.
베스트셀러의 그림자...국민 마스크팩의 수난
K뷰티 위조 범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K뷰티의 성장과 함께 그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다.
'얼굴 전체에 바르는 아이크림'으로 중국 등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AHC 역시 막대한 위조품 피해를 입었다. 가품 일당은 제품 패키지는 물론, 정품 확인을 위해 도입한 QR코드 시스템까지 교묘하게 복제 혹은 우회하는 수법을 썼다. 소비자가 가짜 QR코드를 스캔하면 위조된 정품 인증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웹사이트까지 가짜로 만들어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메디힐 마스크팩은 가품 업자들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중국 내 비밀 공장에서 비위생적인 환경 아래 가짜 마스크팩 수백만 장이 제조 및 유통되어 적발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정품 인증 QR코드나 홀로그램 스티커까지 정교하게 위조해 소비자가 육안으로 구별하기 매우 어려웠으며, 가품 사용 후 심각한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다.
또한 네이처리퍼블릭의 '알로에 베라 수딩젤'이 글로벌 히트를 치자,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패키지와 폰트를 거의 똑같이 모방한 짝퉁 제품이 범람한 바 있다. 로고의 영문 스펠링을 교묘하게 한두 글자 바꾸거나(NATURE를 NATURA로 변경), 패키지의 투명도와 색상을 미세하게 다르게 하는 식의 이른바 '미투(Me-too) 제품'과 명백한 위조품이 혼재되어 유통되었다.
장호석 폴리페놀팩토리 부장은 "가품 판매자를 신고해 차단하면, 다음 날 귀신같이 다른 사업자명으로 간판만 바꿔 달고 또다시 기어 나오는 숨바꼭질이 반복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회사는 전담팀을 꾸려 중고 플랫폼과 오픈마켓을 24시간 감시 중"이라며며 "반드시 공식 판매 채널을 통해서만 구매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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