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로펌 타이틀 달아야 살아 남는다" M&A 나선 로펌들
파이낸셜뉴스
2026.05.07 18:41
수정 : 2026.05.08 09:30기사원문
법률시장도 승자독식 구조 만연
매출·변호사 수 기준 순위 매겨
중견로펌들 몸집 불리기 사활
로펌 양극화는 기업간 분쟁 영향
대기업 고객 유치 위한 생존경쟁
중소기업 선택권 줄어들 수밖에
국내 법률시장이 대기업 고객을 선점하기 위한 대형 로펌 위주의 승자독식 구조로 재편되면서, 중견 로펌들이 생존을 위해 몸집을 불리는 '체급 상향' 경쟁과 합종연횡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기업이 사건을 맡기는 로펌 선택 기준이 갈수록 대규모 조직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10대 대형 로펌 중 6곳이 인수 합병으로 외관을 확장해 왔다.
다만 이 같은 로펌 대형화 추세는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기업의 선택권은 넓어지겠지만, 적정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가 필요한 중소·중견 기업들은 오히려 소외되는 '법률 사각지대'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법무법인(로펌)의 순위는 통상 '매출'과 '변호사 수' 등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10위권에 들면 기업들의 인식부터 다르다.
법조계 관계자 A씨는 "대기업의 경우 보통 사건을 맡길 때 로펌 규모를 보고 리스트업을 한다"며 "5대 로펌, 10대 로펌 등이 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거대 로펌을 선호하는 데는 일종의 '전략적 방어막'을 치려는 목적이 있다. 대형 로펌들을 아군으로 포섭해두면, 향후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상대방이 실력 있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공격해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로펌이 기존 고객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대방의 사건은 맡을 수 없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사실상 '보험용 선점'이다.
이런 경향은 경제 사건이나 지배구조, 안전 관리 등 법적 리스크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소송이 장기화될수록 수사 단계의 위기 대응부터 실제 재판(송무), 사후 관리(자문)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로펌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10대 로펌 안에서도 특정 분야만 강한 곳보다는 전 영역을 아우르는 대형 로펌에 선임료가 집중되는 이유다.
'쏠림 현상'은 압도적인 매출 격차로 증명된다. 국내 부동의 1위인 김앤장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 7000억원(추정치)으로, 2~5위권인 태평양·세종·광장·율촌의 매출을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로펌 업계 경영진 B씨는 "법률 시장이 거대 로펌과 중형 로펌, 개인 사무소라는 세 층위로 완전히 갈라졌다"며 "수년 전부터 시작된 양극화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기업 법무팀이 중하위 로펌을 기피하는 데는 내부적인 '책임 회피' 심리도 작용한다. 10대 로펌 소속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C씨는 "중소 로펌을 선임했다가 패소할 경우 담당자가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지만, 대형 로펌을 쓰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이 선다"며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한 선택인 대형 로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생존 위한 기술적 결합
또 다른 로펌 결합 배경으로 △리걸테크 및 인공지능(AI) 투자 비용 분산 △네트워크 로펌의 급성장 견제 등이 거론된다.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변호사는 "AI가 보편화되면서 서면 작성 능력이나 법률서비스 수준이 상향평준화로 중소형 로펌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대다수가 몸집을 키워야 생존이 가능하다 생각하지만 앞으로 변호사 수와는 다른 경쟁의 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로펌 간 인수합병보다 대형 로펌간 특정 팀 단위 이직, 혹은 부티크 로펌(강소로펌) 흡수 등의 이동도 많아지는 추세다. 강소로펌에 관심을 두는 대기업 취향을 노린 전략이다.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강소 로펌들이 합병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며 "수익이 잘 나고 있고 인사나 재무, 빠른 의사 결정의 장점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로펌 간의 인수합병은 '사람이 전부'인 조직 특성상 일반 기업 M&A보다 실패 확률도 높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지난 2001년 업계 2, 3위 태평양과 광장은 이해상충, 주도권 갈등, 문화적 차이 등으로 합병이 좌초됐다. 또 지평과 한결은 2008년 합병했으나 2년 뒤 갈라서기도 했다. D씨는 "두 로펌이 합병을 할 경우 이해상충 문제로 인한 일부 고객사의 유출과 직원들의 이직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합병을 통해 매출 기여도가 낮은 경영진의 이탈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 시너지· 중기는 소외
지난달 29일 합병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린의 사례는 전문성 시너지 확보 차원으로 풀이된다.
김앤장에서 독립한 린은 '자문' 분야에, 대륙아주는 '송무'에 특화된 로펌이다. 업계에서는 송무와 자문 비율이 5:5~6:4 정도를 이상적으로 본다. 자문의 경우 1~2년 이상 장기 계약이 많아 송무에 비해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어서다.
린의 경우 앞서 LKB, 바른과도 합병을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이번에 대륙아주와 합병을 위해 손을 잡았다. 성사되면 두 회사의 매출액은 1437억원, 변호사수는 384명 규모에 이른다. 매출 기준 8위, 변호사 수 기준 6위권에 들어가는 셈이다.
로펌이 대형화, 양극화 되면서 중소·중견 기업의 선택권이 줄어든다고 일부 법조계는 지적한다. 대형 로펌은 상대적으로 선임료가 고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중소·중견 기업의 법적 분쟁 중 대다수가 대기업의 하청을 받거나 벤더인 업체가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대기업의 갑질로 인해 소송을 제기해도 대부분 대형 로펌은 이미 대기업의 고객인 상황이라 중소형 로펌을 찾게 되고, 이로 인해 소송에서 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hwlee@fnnews.com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이환주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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