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래?" 묻지만 정답은 따로…회식 메뉴 눈치 보는 신입

파이낸셜뉴스       2026.05.09 08:53   수정 : 2026.05.09 08:53기사원문
퇴근 뒤 개인시간 침해 논란
심리적 부담으로 남은 직장 회식
괴롭힘 논란으로도 이어져



[파이낸셜뉴스] "뭐 먹고 싶어요?", "제가 골라도 돼요?"

입사 4개월 차 20대 직장인 A씨는 팀 회식 공지가 올라오면 메뉴보다 먼저 사람들 반응을 살핀다. 팀장은 "편하게 정하라"고 했지만, A씨가 파스타집을 말하자 한 선배는 "회식은 고기지"라고 했다. A씨는 "의견을 물어봐서 말했는데 괜히 나선 사람처럼 됐다"며 "그 뒤로는 그냥 아무거나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회식 메뉴 하나에도 회사 안의 위계가 묻어난다. 오래 다닌 직원에게 회식은 팀 분위기를 맞추는 자리지만, 신입에게는 퇴근 뒤에도 이어지는 업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술을 마실지, 몇 시에 끝날지, 먼저 빠져도 되는지까지 모두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하라"는 회식 메뉴, 신입에게는 어려운 선택


A씨 회사의 회식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린다. 날짜는 팀장이 정하고, 장소는 대체로 선배들이 고른다. 신입에게도 의견을 묻지만 선택지는 넓지 않다. 삼겹살, 회, 치킨처럼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메뉴가 먼저 거론된다.

A씨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분위기를 깨는 것 같고, 먼저 빠지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회식이 싫다기보다 선택권이 없는 느낌이 힘들다"며 "메뉴를 고르는 척하지만 결국 정해진 방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팀장급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40대 직장인 B씨는 "요즘은 예전처럼 술을 강요하지도 않고 2차도 거의 안 간다"며 "그래도 얼굴 보고 밥 먹는 시간이 있어야 팀이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메신저와 회의만으로는 서로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인 10명 중 4명 "대면 회식 부정적"


회식에 대한 부담은 개인의 취향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퇴근 뒤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맞춰야 하는 부담, 술자리 분위기까지 한꺼번에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이나 저연차 직원은 "편하게 하라"는 말이 있어도 실제로는 선배와 상사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 경우가 많다.

2022년 인크루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드러났다. 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사내 대면 회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퇴근 이후 회식으로 개인시간을 방해받는다는 응답이 55.7%로 가장 많았다. 많은 사람과의 모임에서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15.2%, 2·3차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부담이라는 응답은 11.0%였다.

회식이 강요로 받아들여질 때는 문제의 성격도 달라진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는 응답은 33%였다. 유형별로는 모욕·명예훼손 17.8%, 부당 지시 16.4%, 폭행·폭언 15.4%, 업무 외 활동 강요 15.4% 순이었다. 회식 참석이나 음주 강요도 업무 외 활동 강요에 포함될 수 있다.

회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는 기준은 달라졌다. 회사에 오래 있던 직원에게는 친목 자리지만, 젊은 직원에게는 퇴근 뒤 일정과 체력, 음주 여부까지 따져야 하는 약속이 됐다.

한 20대 직장인은 "점심 회식이면 차라리 편하다"며 "저녁 회식은 끝나는 시간이 애매하고 다음 날 출근도 그대로라 부담된다"고 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술을 안 마셔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자리에 가면 한 잔은 받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퇴근 뒤 이어지는 술자리, 신입에게는 또 다른 평가 시간


회식 자체가 곧 문제는 아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업무 중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갈등은 선택권이 없을 때 커진다. 불참을 말하기 어렵거나, 술을 거절한 뒤 "요즘 신입은 다르다"는 말을 듣는 순간 회식은 친목보다 평가에 가까워진다.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상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한다. 회식 참여나 음주가 반복적으로 강요되고, 거절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단순한 회사 문화로 넘기기 어렵다.

A씨는 최근 팀 회식 공지가 올라오자 메뉴 투표에만 참여했다.
그는 "회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건 안다"면서도 "정말 의견을 묻는 자리라면 술을 마실지, 몇 시에 끝낼지도 같이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입에게 메뉴를 묻는 것만으로 회식이 수평적이 되지는 않는다. 장소와 시간, 술자리 방식까지 선택할 수 있어야 회식은 눈치 보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밥 먹는 시간이 된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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