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통한 전력수급 체계 전환

파이낸셜뉴스       2026.05.10 19:06   수정 : 2026.05.10 19:06기사원문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전기사업법'에 근거한 대표적인 중장기 에너지 계획으로, 2년마다 향후 15년의 전력수요와 공급계획을 제시한다. 전력은 산업 경쟁력과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인 만큼 우리나라 전력계획은 1960년대 전원개발계획에서 출발, 오늘날의 법정계획인 전기본으로 발전해 왔다. 올해 수립될 제12차 전기본은 2040년까지의 전력수급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인공지능 확산과 전기화 가속으로 전력수요는 물론 전력망과 공급설비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과거처럼 정교한 수치 중심의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만으로는 계획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또한 공급계획은 쿼터제와 같이 전원별로 할당량을 정하는 모양새로 제시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제10차 전기본은 2036년 기준 재생에너지 102GW, 원전 31.7GW를, 제11차 전기본은 2038년 기준 재생에너지 122GW, 원전 35.2GW의 설비용량을 제시했다. 이 같은 도식적 제시는 계획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하나 전원 간 갈등을 구조화하고 전원별 할당구조를 고착시켜 경쟁과 효율개선을 저해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11차 전기본은 처음으로 '무탄소전원 경쟁시장'을 제시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수소 혼소 발전 등 다양한 무탄소전원이 경쟁을 통해 전력 공급자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단순한 설비 확충이 아니라 가격경쟁력, 공급 유연성 및 신뢰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저장장치나 수력과 결합해 간헐성을 보완해야 하며, 원전 역시 충분한 운전 유연성과 신속한 건설역량을 갖춰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력망 영향을 포함한 총비용 관점의 전력비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기요금 상승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무탄소전원 경쟁시장은 다양한 전원을 동일한 기준에서 경쟁시키는 구조를 통해 비용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유사한 방향의 정책은 해외에서도 확인된다. 호주는 기술 중립적 전력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 역시 가격뿐 아니라 신뢰도와 유연성을 반영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전력 공급자를 선정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무탄소전원 경쟁시장과 동일한 제도는 아니지만, 시장 기반 선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만 제도 설계는 쉽지 않다. 기술별 특성을 어떻게 공정하게 반영할 것인지, 시장 규모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그리고 전력망 제약을 어떻게 가격에 반영할 것인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잘못 설계되면 오히려 비용 증가나 투자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은 분명하다. 무탄소전원 경쟁시장은 '쿼터형 계획'에서 벗어나 시장 경쟁을 통해 더 실효적인 전원믹스를 형성하려는 시도다.
이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반복적인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제12차 전기본은 단순한 설비 목표를 넘어 시장과 경쟁을 통한 전력수급 체계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무탄소전원 경쟁시장의 과감한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