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가지 처방은 얻기 쉬우나, 한 가지 효과를 얻기 어렵다
파이낸셜뉴스
2026.05.16 06:00
수정 : 2026.05.16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에 연승(聯升)이란 자가 있었다. 연승은 휴식리(休息痢,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이질)를 앓았는데, 거의 2년 동안 낫지 않았다.
연승은 우연히 길에서 친척 의원을 만났다. 친척 의원이 연승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빛이 시들고 기운이 위축된 것을 보니 탈혈(脫血)의 증후로구나.'라고 생각했다.
의원은 연승에게 "어디가 아픈게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연승은 지금까지 있었던 병세를 말했다. 친척 의원은 "나도 네가 오랫동안 이질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이제 네 병은 이미 깊어 치료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다. 왜 일찍 나를 찾아오지 않았느냐?"라고 하였다.
연승이 "사실 의원님께 치료를 받아 보려고 했지만, 그리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 괜히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꺼렸습니다. 저는 제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원들에게 치료를 받아 왔는데, 나을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 차일피일 병세만 악화되고 있으니 저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연승의 말을 듣고서는 "나에게 약이 있으니 네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 나는 대로 와서 가서 가져가도록 하거라."하였다. 그러자 연승은 "지금 당장 가서 약을 가져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증상이 심한 통에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의원은 연승을 데리고 약방으로 갔다. 의원은 진찰해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자신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무슨 씨앗을 주었다. 그러면서 "이 씨앗의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취한 후에 용안육 살로 겉을 싸서 비벼 환을 만들어서 매일 아침 미음으로 30환을 삼킨 뒤 곧 음식을 먹어 눌러 주도록 하거라."라고 했다.
연승은 친척 의원이 준 씨앗을 집으로 가져가서 시키는 대로 복용했다. 그런데 두 번 정도 복용하자 곧바로 속이 편해지면 이질 증상이 멎었다. 지금껏 2년이나 된 병으로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았는데, 이 약은 효과가 이처럼 빨라서 무척 놀랐다. 연승과 그의 가족은 이 약을 '신단(神丹)'이라 불렀다.
연승의 아버지 또한 의서를 어느 정도 읽었기 때문에 아들의 병세가 며칠 만에 진정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감사인사도 전하고 궁금한 점도 물을 겸 친척 의원을 찾아갔다. "제 자식 연승의 병을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오, 그런데 도대체 그 약이 뭐요? 무척 신기하구려."라고 했다.
의원은 "그 처방은 오직 아담자(鴉膽子) 한 가지입니다. 예전에 이 약재를 처음 얻은 사람에게 전해 듣기로 아담자는 오로지 휴식리(休息痢)를 치료하며, 또한 장풍(腸風)으로 인한 변혈(장출혈)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껏 사용해 보니 적으면 한두 번, 많으면 서너 번 복용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연승의 아버지는 "그럼 왜 다른 의원들은 이 처방을 몰랐던 것이오?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약재 이름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저도 처음에는 아담자를 본초서에서 찾지 못하여 상고(詳考)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유집성(幼幼集成)>을 보니 '이질이 오래되면 사기(邪氣)가 대장의 굴곡진 곳에 붙어 약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를 쓰면 기이한 효험이 있다.'라는 기록을 보고 지금껏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던 연승의 아버지는 "생각해 보니 허약하고 오래된 병을 치료할 때는 인삼, 황기, 당귀, 숙지황 등을 몇 근씩 써서야 낫는 경우가 있고, 상한열병을 치료할 때는 건강, 부자, 망초, 대황 등을 몇 냥씩 쓰고서야 낫는 경우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아담자는 이렇게 한 두 번만 복용해서도 수년 된 병을 치료하니 그 효과가 신묘합니다. 사물의 이치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구려."라고 했다.
의원은 "천 가지 처방은 얻기 쉬우나, 그 중 한가지 효과를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라고 하였다. 연승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자(鴉膽子)는 소태나무과에 속한 상록 관목인 아담자 나무의 잘 익은 열매를 건조한 것을 말한다. 그 모양이 까마귀[鴉]의 쓸개[膽]와 비슷하게 생겼고, 맛이 몹시 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고삼자(苦參子)라고도 불린다.
아담자는 <본초강목습유>에도 나오는데, 성질은 차고 맛은 매우 쓰며 독이 있으며 예로부터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이질을 멎게 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또한 학질(말라리아) 원충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서 학질의 발작을 그치게 하는 효능도 있다. 외용제로는 사마귀, 티눈, 굳은살 제거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담자는 위장 점막을 강하게 자극하고 맛이 극도로 쓰기 때문에, 탕제(달인 물)로 복용하지 않고 주로 껍질을 벗긴 씨앗을 통째로 삼켜야 한다. 용안육에 싸서 복용하는 이유는 위장 보호를 위해서이다. 독성을 지니고 있어 장기 복용이나 과량 복용을 엄격히 금해야 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도 신중해야 한다.
요즘에는 아담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독성 때문에 함부로 쓰기 힘들다. 평소 설사가 잦다면 도토리가루나 율피(栗皮)처럼 탄닌이 풍부한 음식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이들 식품은 예로부터 장을 수렴(收斂)시켜 설사를 멎게 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이질(痢疾)은 단순한 설사와는 다르다. 쉽게 말하면 이질은 장에 염증이 심해서 배가 아프고, 자주 조금씩 변을 보며, 점액이나 피가 섞이는 병을 말한다. 배가 살살 아프면서 뒤가 묵직하고, 변을 보고 나도 또 마려운 느낌(후중감)이 있으며, 대변을 자주 보면서 점액변이나 혈변을 동반하기도 한다. 세균성 장염이나 만성 염증성 장질환일 때 보인다.
반면에 일반적인 설사는 주로 물 같은 변을 많이 보고, 급성 장염이나 음식 문제로 생기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거나 식이조절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치는 경우가 흔하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정행헌의안(程杏軒醫案)>族人聯升休息痢證治奇驗. 族人聯升,患休息痢,淹纏兩載,藥如清火固澀,補中升提,遍嘗無效。偶遇諸塗,望其色萎氣怯,知為脫血之候。謂曰:爾病已深,不治將殆。渠告其故,予曰:吾寓有藥,能愈爾病。盍往取之。比隨至寓付藥,再服即愈。渠以兩年之疾,百治不瘳,此藥效速如此,稱為神丹。方用鴉膽子一味,去殼取仁,外包桂圓肉捻丸,每早米湯送下三十粒,旋以食壓之。此方初得之人,傳專治休息痢,並治腸風便血,少則一二服,多則三四服,無不應驗。其物不載本草,無從稽考,其味極苦,似屬性寒,後閱幼幼集成書云:痢久邪附大腸屈曲之處,藥力所不能到,用此奇效。思治虛怯沉疴,參耆歸地有用數斤愈者,治傷寒熱病,姜附硝黃有用數兩愈者。何此物每用不過二三分,治積年之病,其效如神,物理真不可測。先哲云:千方易得,一效難求。信矣。(친족인 연승이 휴식리를 앓았는데, 거의 2년 동안 질질 끌었다. 청열약·고삽약을 쓰기도 하고, 보중승제하는 약도 두루 써 보았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우연히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얼굴빛이 시들고 기운이 위축된 것을 보고 탈혈의 증후임을 알았다. 내가 말하기를, "네 병이 이미 깊어 치료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다." 하였다. 그가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묵는 곳에 약이 있으니 네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가서 가져가라." 하였다. 곧 함께 숙소로 가서 약을 주었는데, 두 번 복용하자 곧 나았다. 그는 2년이나 된 병이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았는데, 이 약은 효과가 이처럼 빨라 이를 '신단'이라 불렀다. 처방은 오직 아담자 한 가지였다.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취해, 계원육(용안육)으로 겉을 싸서 비벼 환을 만들고, 매일 아침 미음으로 30환을 삼킨 뒤 곧 음식을 먹어 눌러 주었다. 이 처방은 처음 얻은 사람에게 전해 들었는데, 오로지 휴식리를 치료하며, 또한 장풍으로 인한 변혈도 치료한다고 하였다. 적으면 한두 번, 많으면 서너 번 복용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었다. 이 약물은 본초서에 실려 있지 않아 상고할 길이 없다. 맛은 매우 쓰고, 성질은 아마도 차가운 듯하다. 뒤에 유유집성을 보니 "이질이 오래되면 사기가 대장의 굴곡진 곳에 붙어 약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를 쓰면 기이한 효험이 있다."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니 허약하고 오래된 병을 치료할 때는 인삼·황기·당귀·숙지황 등을 몇 근씩 써서야 낫는 경우가 있고, 상한열병을 치료할 때는 건강·부자·망초·대황 등을 몇 냥씩 써서야 낫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물건은 매번 2~3푼을 넘지 않게 쓰면서도 수년 된 병을 치료하니, 그 효과가 신묘하다. 사물의 이치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선철이 이르기를 "천 가지 처방은 얻기 쉬우나, 한 가지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하였으니, 참으로 그렇다.)
<본초강목습유>〇 鴉膽子. 一名苦參子, 一名鴉膽子. 出閩廣, 藥肆中皆有之. 形如梧子, 其仁多油, 生食令人吐. 作霜搥去油, 入藥佳. (아담자. 일명 고삼자라고도 하고, 아담자라고도 한다. 민광지역에서 나고 약방에 다 있다. 모양은 벽오동씨 같고, 속씨는 기름이 많아서 생으로 먹으면 토하게 한다. 흰 가루가 묻은 것을 두들겨 기름을 제거하고 약에 넣어야 좋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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