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첫 고객, 정부가 되다

파이낸셜뉴스       2026.05.12 18:19   수정 : 2026.05.12 18:32기사원문

로봇을 만드는 순간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누가 사용하는지, 어디에 납품하는지, 검증 됐는지"였다. 이 짧은 질문 앞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무너진다. 기술은 있지만 레퍼런스가 없고, 레퍼런스가 없어 고객을 만날 수 없는 악순환이다.

국내 연구개발(R&D) 투자는 119조원으로 세계 5위(2023년)지만 사업화는 16.4%에 그친다. 혁신 기술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역설은 이 숫자 위에서 굳어졌다.

정부의 '혁신창업국가 실현'은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모두의 창업'이 입구라면 정부가 직접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는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는 출구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축이 맞물릴 때 '국가창업시대'는 슬로건이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는 네 가지 매커니즘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현장 실증이다. 경찰청·국가유산청·육군·해경 등 정부 기관이 행정 현장의 문을 활짝 열어 스타트업과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이렇게 발 벗고 나선 사례는 흔치 않다. 두 번째는 혁신 제품 패스트트랙이다. 실증 성공 기업은 공공성 평가 면제로 혁신 제품 지정에 빠르게 접근하고 정부 기관은 수의계약이 가능해 신속 구매가 가능하다. 세 번째는 시범 구매 연결이다. 실증 통과 제품이 바로 공공구매 시장으로 이어지도록 조달청이 시범 구매를 함께 열었다. 부처 협업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작동한 신호로 범정부 차원의 약속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글로벌 실증이다. 중소벤처기업부 해외거점기관을 통해 수요기관을 발굴하고 글로벌 실증 및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즉 스타트업 시각에서 보면 실증이 혁신 제품으로, 구매로, 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낸 '전주기 지원'을 의미한다.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인 '레퍼런스 부재'를 공공 실증으로 풀고 해외 시장으로 잇는다.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존 정부 사업의 틀을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첫 실증·구매는 사업명부터 정부 의지와 약속을 표방하며 시장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단순 '보조'나 '지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스타트업을 지원 대상이 아니라 공급자로 재정의하며 정부가 고객이 된다. 더욱이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실증(PoC)을 넘어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단편적 실증에 그치지 않고 구매까지 전 단계를 설계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런 노력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환경·복지·문화 등 다양한 부처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이 함께 풀 수 있는 과제가 많다. 지속적인 운영도 필요하다.

기술은 발명이 적용될 때 시장과 산업으로 발전된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가 그동안 충분히 다루지 못한 '첫 고객'의 자리를 제시한다.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는 순간 다음 미래도 시작된다. 정부가 첫 고객이 되면 스타트업도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스타트업이 더 이상 '첫 고객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두려워하지 않는 풍경을, 그 미래가 멀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황보제민 KAIST 교수 라이온로보틱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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