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가담자도 현충원 묻히나…국립묘지법 허점

뉴스1       2026.05.15 08:05   수정 : 2026.05.15 08:05기사원문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지난달 30일 대전현충원 박준병 육군대장 묘역의 모습. 박준병 육군대장은 1980년 5월 당시 20사단장으로 광주학살 5적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지난달 30일 대전현충원에 있는 장태완 장군의 묘 바로 옆에 반란군 정도영의 묘가 함께 자리해 있는 모습.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편집자주]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자와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현실은 현행 국립묘지법의 치명적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처벌 여부나 사망 시점, 서훈 유무 등 형식적 기준에만 의존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묻히는 모순이 국립묘지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다.

이런 허점을 방치할 경우 유사한 권력남용 사건인 12·3 비상계엄 가담자도 국립묘지에 잠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묘지에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이 묻힐 수 있다. 그 인물의 정의와 공공성을 바탕으로 국가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국립묘지법 제1조가 명시한 국립묘지 설치의 최우선 목적이다.

그러나 법률 안장 배제 기준이 느슨해 논란의 인물들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내란이나 반란 관련 범죄로 금고 1년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 안장을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거나 형이 확정되기 전 사망하거나, 아예 기소되지 않은 인물들은 법적·역사적 평가와 무관하게 안장이 가능하다.

훈장을 받은 경우 서훈이 취소되지 않는 한 안장이 유지되는 점도 허점이다.

'광주 학살 5적'이라 불리는 박준병과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 진압 후 환하게 웃는 모습이 포착된 소준열을 비롯해 12·12 군사반란 지휘부였던 유학성, 정도영 등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유다.

박준병은 12·12 군사반란 당시 20사단 지휘부로 반란에 가담했고 이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해당 부대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박준병은 1996년 내란수괴 재판을 받았지만, 직접적인 가담 의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로 안장 제한 기준을 피하면서 그는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박준병은 반란을 지휘하고, 전두환 사조직인 하나회 핵심 멤버이자 광주학살 주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준열 역시 5·18 당시 광주학살을 자행했지만 처벌받지 않았고 이후 충무무공훈장을 받으며 안장 자격을 갖췄다.

특히 2018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공개한 영상에서 옛 전남도청 진압 직후 승리감에 도취해 웃음을 보인 모습이 공개되는 등의 행적이 뒤늦게 드러났음에도 이런 인물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을 법적 장치는 여전히 전무하다.

형이 확정됐지만 국립묘지에 묻힌 이도 있다. 신군부 반란에 앞장서고 초대 안전기획부장을 맡았던 유학성은 사망 시점이 변수로 작용했다.

유학성은 반란 및 내란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상고심 선고 전 지병으로 숨졌다. 우리나라 법률상 망인에 대한 공소가 불가해 유학성은 안장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함께 가담했던 차규헌과 황영시는 대법원 상고심 확정 이후 사망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았다.

군사 반란 과정에서 감청을 통해 부대 출동 저지 임무를 수행해 반란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정도영. 그는 5·18 때 유혈진압 근거가 된 '자위권 보유 천명 담화문'을 이희성 계엄사령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에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0년 사망 후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특히 그는 반란에 맞섰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바로 옆에 묻혀 있어 상징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립묘지의 상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안장 기준을 보다 엄격하고 입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시도가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가담한 인물이 국가유공자나 보훈대상자로 지정됐을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자격을 박탈하도록 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미 안장된 경우 다른 장소로 이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5년 뒤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김 의원은 "친일 행위나 군사 반란, 내란 등에 가담했던 인물은 국가와 국민에게 큰 피해를 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의 희생됐는데 이러한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이 영예성과 추의, 위훈 정신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도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 국민 선택을 받은 선출직 공직자 역시 헌정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민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 시대와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보다 명확하고 엄격한 안장 배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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