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망해보니 알겠어요...문제가 10개 있다면, 할 수 있는 것 하나부터 풀어보세요"

파이낸셜뉴스       2026.05.17 10:00   수정 : 2026.05.17 16:19기사원문
들국화부터 걸그룹 매니저까지, K팝의 산증인 김평희 사진작가
사업 실패 후 11년의 사투…"자부심 하나로 빚 다 갚고 떳떳하게 돌아왔죠"
라이카가 인정한 '마스터샷', 찰나의 풍경 속에서 발견한 진짜 '나'



[파이낸셜뉴스] 1980년대 후반, 전설적인 들국화의 소속사 동아기획에서 시작해 김현철, 유리상자, 박혜경 등 숱한 스타들의 감성을 빚어낸 음반 제작자. 35년 넘게 K팝의 최전선을 누비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김평희 작가의 인생은 늘 화려한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소리 없는 렌즈 너머 세상을 응시합니다. 사업 실패라는 혹독한 시련을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몸으로 견뎌낸 뒤, 그는 새로 얻은 '작가'라는 명함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11년의 고독한 사투, "가장 비싼 매니저로 빚을 갚았습니다"


김 작가의 인생 1막은 1989년, '들국화'의 최성원씨 소개로 시작된 매니저 생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장 오랫동안 했던 일은 가수 매니저였다"라고 자부할 만큼, 그는 35년 가까이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일하며 수많은 가수들과 인연을 쌓았다. 차마 말하지 못할 고생을 하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독립한 건 1995년께였습니다. '왜 그래'라는 곡으로 유명한 김현철의 4집 'Who Stepped On It'를 제작하며 독립한 뒤 유리상자, 모세, 박혜경 등 이름난 스타들의 음반을 맡아 승승장구했죠. 그러다 예기치 못한 실패가 한순간에 찾아왔습니다.

"가수들은 다 잘 됐는데 제가 사업을 잘못해서 사실 크게 망했어요. 너무 크게 망하다 보니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는 정말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는데,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십시일반 돈도 보태주고 목숨 걸고 저를 지켜줬습니다. 망했을 때 주머니에 30만원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처음 몇 달 간은 주변 후배들 집에 가서 얹혀살기도 하고 그랬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빚을 갚고 재기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하던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커리어가 증명하는 대로, 다시 매니저로 나선 거죠. 당시를 떠올리며 김 대표는 "아마 지난 1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매니저가 저였을 것"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 자부심 하나로, 11년 동안 오직 빚을 갚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채무를 모두 정리한 뒤 업계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스스로 정년퇴직을 정해놓은 거예요. 사람들에게 빚진 것 없이 다 갚고 떳떳하게 그만두자. 그게 후배들을 위해서도 더 멋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죠."





렌즈 너머에서 마주한 '나'라는 풍경


"얼떨결에 (사진을)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처음엔 재미로 하다가, 점점 (카메라) 가격이 올라가더라고요."

은퇴 후 마주한 공백기, 동료의 추천으로 우연히 들게 된 카메라는 그에게 새로운 구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때까지 즐길 만한 취미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김 작가는 "막상 카메라를 들고나니 약이 오르더라"고 자신의 첫 출발을 돌이켰습니다. 음악을 제작할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앨범 전곡을 폐기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던 집요함이 사진에서도 발휘된 겁니다.

일면식도 없던 '카메라 설명해 주는 남자' 유튜브 채널의 김현수 작가에게 "사진을 가르쳐달라"고 들이댄 것처럼, 그는 사진을 더 잘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스승'으로 삼을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덕분에 김현수 작가를 비롯해 우상희 작가, 이서윤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됐죠. 그는 자신을 가르쳐 준 세 분의 '스승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 '아, 사실 내가 찍고 있었던 건 바로 나였구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사진에 찍힌) 저 날카로운 선 안에 제가 있었고, 저 넓은 사막에도 제가 있었고, 그 모든 풍경 안에 다 제가 있어서 찍은 거더라고요."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피사체를 담는 행위가 아니라, 억눌러왔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사진에 재미를 붙인 김 작가는 단순히 취미에 머물지 않고 사진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추천으로 독일 명품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가 운영하는 사진 아카이브이자 전시 플랫폼인 LFI 갤러리의 '마스터샷'(Mastershot)에 두 차례나 선정되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김 작가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고, 돈으로 절대 평가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선정됐을 때의 기쁨을 전했습니다.

"눈앞에 10개의 문제가 있다면, 하나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가세요"


김 작가는 이제 단순히 풍경을 찍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내면을 렌즈에 담으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다가오는 6월, 다시 한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입니다. 대신 이번 여행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또,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뜻도 밝혔죠.

"순례길에서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찍고 싶어요. 그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갈까?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여기까지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통해서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순례길을 함께 걸으면서 마음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마지막으로 그는 11년의 시련을 이겨낸 선배로서 묵직하고도 현실적인 위로를 건넸습니다.

"지금 당장 절벽에 서 있는 것 같아도, 너무 빨리 뭘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조금만 천천히 생각해 보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풀어가야 합니다. 당장 내 눈앞에 문제 10개가 있으면 하나부터 풀어 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10개 다 풀립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내다 보면, 우리에게 찾아온 삶의 고난에 대해서도 내성이 생길 거예요. 내 앞의 절벽을 버텨내고, 문제 10개를 풀어냈다는 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다 할 수 있다는 원동력이 되어줄 겁니다.
"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주변에 멋지게 인생 2막을 시작한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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