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가 아이들을 망칠 것이다

파이낸셜뉴스       2026.05.16 07:00   수정 : 2026.05.16 07:00기사원문
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8편

[파이낸셜뉴스] "계산기는 절대 학교에 가져오지 마라. 발견 즉시 압수다."

1980년을 전후해, 손바닥만 한 크기에 숫자 버튼이 촘촘히 박힌 작은 플라스틱 기계가 교실 책상 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계에 기대기 시작하면 머리가 물러진다."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전국수학교사협회는 계산기 사용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학부모들은 학교로 전화를 걸어 교육의 방향을 되물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학 실력이란 종이와 연필만으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숫자를 계산할 수 있는가를 뜻했다. 연산 능력이 곧 지능의 척도였다. 그런 인식 속에서 계산기는 학습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 과정을 건너뛰게 만드는 위험한 장치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당시의 우려가 어느 정도는 맞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간단한 덧셈 뺄셈만 마주해도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리기 일쑤다.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가물가물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한 사칙연산과 암기력이라는 잣대만 들이댄다면 우리의 뇌는 분명 과거보다 무뎌졌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되짚어볼 부분이 있다. 과연 이것을 인류 지능의 집단적 퇴화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대답은 단연코 아니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단순 연산이라는 중노동에서 해방된 순간 인류는 그 여분의 에너지를 이전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던 고차원의 사고 영역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손으로 로그표를 뒤지고 미분 방정식을 계산하느라 밤을 새워야 했다면 아폴로 11호는 달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계산기의 등장은 수학이라는 학문의 정의 자체를 바꿔놓았다. 과거의 수학이 "누가 더 빠르게 푸느냐"를 겨루는 기능 경기였다면, 계산기 이후의 수학은 "어떤 공식을, 어떤 상황에, 왜 적용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고의 학문이 되었다. 계산기는 인간을 바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계산기 같은 노동자'의 자리에서 '사고의 설계자'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지금 계산기가 차지했던 자리에 초거대 AI가 들어섰다. 이번에는 수학 교사 대신 국어 교사와 컴퓨터 교사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AI가 글쓰기 숙제를 대신하면 사고력은 무너지는 것 아닐까?" "AI가 코드를 짜주면 원리도 모르는 개발자만 남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빼앗지 않았다. 다만 능력이 발휘되는 위치를 바꿔놓았을 뿐이다. 계산기가 암산을 가져갔다면 AI는 단순한 코딩 문법과 상투적인 문장 구성에 대한 고민을 가져갔다. 대신 인간에게 남는 과제는 더 본질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문법이 아니라 아키텍처다. 코드가 아니라 의도이고, 단어가 아니라 맥락이다.


암산을 못 해도 괜찮다. 대신 항로를 설계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숫자라는 무거운 닻을 올린 순간 인류의 지성은 비로소 우주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AI라는 닻을 올리는 지금 우리는 또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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