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은 자리, 남아야 할 것은 '리더' (13)
파이낸셜뉴스
2026.05.17 09:00
수정 : 2026.05.17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2025년 8월 말, 구글의 People Analytics을 담당하는 부사장 브라이언 웰리(Brian Welle)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는 1년 전보다 35% 적은 매니저를 두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원 3명 미만의 작은 팀을 이끌던 매니저들이었다.
자리는 사라졌지만, 사람의 다수는 개인 기여자로 회사에 남았다. 같은 자리에서 알파벳 CEO인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효율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회사가 커진다고 매번 사람을 더 붙여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조직에서의 중간직급은 지난 100년간 다져온 자리다. 컨베이어벨트 시대에는 작업을 감독할 사람이 필요했고, 다국적 기업 시대에는 본사와 현장을 잇는 보고선이 필요했으며, IT 시대에는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할 사람이 필요했다. 중간관리자는 늘 '정보의 길목'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길목이 지금 사라지고 있다. AI 대시보드는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협업 도구는 결재선을 단축하며, 분석 모델은 KPI를 자동으로 추적한다. 그렇다면, 이 길목에 서 있던 중간관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러나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 있다
여기서 멈추면 또 하나의 'AI 위협론'이 될 뿐이다. 가트너(Gartner)가 2026년 2월 발표한 후속 보고서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2025년 10월에 실시된 고객서비스·지원 리더 321명 대상 설문 결과, AI를 이유로 실제 인력을 감축한 기업은 20%에 그쳤다. 나머지 80%는 더 많은 고객을 응대하면서도 인력을 유지했다. 가트너(Gartner)의 시니어 디렉터인 에밀리 포토스키(Emily Potosky)는 "AI는 인간이 제공하는 전문성, 공감, 판단력을 완전히 대체할 만큼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지금 AI에만 의존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가트너는 한발 더 나아가, AI를 이유로 사람을 자른 기업의 절반이 2027년까지 유사 업무를 위해 다시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은 물론 고객서비스 영역에 한정된 조사이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는 중간관리자의 업무를 잠식하고 있지만, 사람을 곧장 대체하지는 못한다. 대체되는 것은 '역할의 일부'이고, 살아남는 것은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경영자들이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은 채 칼을 든다는 점이다.
구글의 사례가 우려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율화의 논리는 명료하다. 매니저 한 명의 인건비를 줄이면 그만큼의 비용이 줄어든다. 결재선이 짧아지면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단기 손익 계산기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그 계산기에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
중간관리자가 해온 일을 다시 들여다보면, AI가 가져갈 수 있는 영역과 결코 가져갈 수 없는 영역이 갈린다. AI가 가져가는 것은 일정 조정, 데이터 취합, 표준 보고, 1차 성과 분석 같은 '운영 관리'다. 반면 AI가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부원이 번아웃에 빠졌을 때 그 신호를 읽고 개입하는 일, 팀의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는 일, 갈등 한복판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새로운 합의를 끌어내는 일, 위에서 내려온 모호한 지시를 부원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것들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가트너 보고서가 짚은 부작용도 정확히 이 지점이다. AI로 중간층을 도려내면 단기적으로는 인건비가 줄지만, 전통적인 멘토링 경로가 끊기고 후배 직원들의 성장 기회가 사라진다. 남은 매니저에게 관리 책임이 몰려 또 다른 번아웃이 발생한다. 효율화의 비용이 다른 자리에서 청구되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를 줄이지 말고 역할을 재설계 해라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CEO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자르기 전에 재정의가 필요하다. 먼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분해해 보자. 운영적 업무 70%, 사람관리 20%, 전략적 판단 10%가 일반적인 비중이다. 이 중 운영의 상당 부분은 AI에 넘기고, 그렇게 비워진 시간을 사람관리와 전략적 판단으로 채워야 한다. 매니저의 자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을 바꾸는 일이다. 이는 교육 프로그램 한두 번으로 되지 않는다. '몇 건의 보고를 올렸는가'에서 '몇 명의 부원이 성장했는가'로, '얼마나 빠르게 처리했는가'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했는가'로 평가지표 자체를 바꿔야 한다.
다음으로, 좋은 매니저는 가장 먼저 떠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직이 효율화의 신호를 보내는 순간, 시장에서 가치있는 인재는 다른 회사가 먼저 알아본다. 자르기 쉬운 사람부터 자르는 게 아니라, 자르고 나면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헤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CEO 자신이 메시지를 내야 한다. 그 메시지는 '효율화'가 아니라 '재정의'여야 한다.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보고서를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의 성장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그것이 새로운 존재 이유라고 명시적으로 말해야 한다. 리더의 침묵은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조직의 중간이 비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지는 여전히 리더의 선택이다. 사라지는 것은 자리다. 남아야 할 것은 리더다.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조직에는 효율도, 사람도, 미래도 남지 않는다.
/김문경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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