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댐 수상태양광·예천양수발전소 가보니
파이낸셜뉴스
2026.05.18 12:00
수정 : 2026.05.18 12:00기사원문
수면 위엔 태양이, 산 아래엔 주파수가 흐른다
낮엔 햇빛을 거두고, 밤엔 전력망을 지킨다
[파이낸셜뉴스]지난 15일 방문한 경북 안동과 예천. 산과 물이 어우러진 내륙 깊숙이, 태양과 중력이라는 가장 오래된 자연의 힘이 21세기형 전력 인프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AI·데이터센터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대, 두 시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에너지는 멀리 있지 않다.
■푸른 물 위에 태양이 피운 무궁화
수상태양광은 산지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고, 수면의 냉각 효과 덕분에 발전 효율은 육상보다 높다. 태양광 모듈이 수면을 덮어 녹조 발생을 억제하고 수중 생물에게 산란처를 제공하는 부수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설은 기존 임하댐 수력발전소의 송전계통을 그대로 공유하는 '교차발전' 방식을 도입해 송전망을 한 미터도 새로 늘리지 않았다. 낮에는 태양광 전기가, 밤에는 수력전기가 같은 선로를 번갈아 흐른다. 전국적으로 송전계통 확보 문제가 골칫거리인 상황에서 찾아낸 창의적 해법이다.
이 사업은 국가만의 작품이 아니다. 경상북도·안동시 주도, 한국수력원자력·한국수자원공사 시행의 '국내 1호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로, 반경 1km 이내 33개 마을 4000여 명이 직접 투자자로 참여했다. 연간 약 6만1000MWh의 전기를 생산해 향후 20년간 약 222억 원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에너지를 쓰기만 하던 주민이 만들고 거두는 주체가 된 것이다.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배터리
경북 예천군 은풍면 깊은 산골짜기, 전력계통의 '최후의 보루'가 숨어 있다. 발전소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약 720m 터널을 통과해 내려가자, 습하고 서늘한 공기와 함께 2대의 육중한 발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리는 단순하다. 약 484m 위 상부댐에서 떨어지는 물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고, 전기가 남을 때는 역으로 발전기를 돌려 물을 끌어올려 저장한다. 전기를 '물'의 형태로 보관하는 셈이다.
2011년 준공된 예천양수발전소는 국내에서 가장 최신의 양수발전소로, 설비용량 800MW 규모다. 전기는 매 순간 60Hz의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날씨에 따라 출력이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이 균형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다른 발전소가 전력 생산에 수 시간이 걸리는 반면, 양수발전소는 단 3~5분이면 전력을 쏟아낼 수 있어 순간적인 변동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긴급 구조대' 역할을 한다.
박병조 예천양수발전소 소장은 "어느 ESS보다 규모가 크고 안정성도 뛰어난,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배터리"라고 표현했다.
양수발전소는 블랙아웃 위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멈추더라도 상부댐의 물을 내려 전기를 만들어 다른 발전소를 재가동시키는 마중물이 된다. 꺼진 전력망을 다시 지피는 '불쏘시개'다. 한수원은 현재 전국 7곳 16기의 양수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영동·홍천·포천 등 3곳에 1.8GW 규모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총공사비 4조3000억 원, 2030~2033년 순차 준공 예정이다. 예천의 깊은 산세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흐르는 물이 우리 전력의 품질을 지키고 있다. 국가 전력망의 가장 은밀하고 믿음직한 버팀목이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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