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라면 처방뿐만 아니라 조제에도 신중해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2026.05.23 06:00   수정 : 2026.05.23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진모(陳某)씨의 아들이 여름철 감기 증상이 있었다. 아들을 여러 의원들이 치료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진모씨는 수소문 끝에 한 의원을 찾아서 아들의 병세를 상의했다.

그 의원은 찬 약을 써보자고 했는데, 그 지방 풍속에 '열약을 먹어 탈이 나면 구할 수 있으나, 서늘한 약을 먹으면 구할 수 없다.'고 여겨서 가족들은 끝내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지 않았다.

의원은 '환자가 의원을 믿지 못하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제대로 된 처방을 복용해도 효과가 나지 않을 것이거늘...' 하면서 한탄했다.

아들의 병세가 더욱 심해지자 진모씨는 다시 그 의원을 불렀으나 의원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진모씨에게는 평소 의원과 왕래를 하는 호군(胡君)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호군은 전에 이 의원과 함께 의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의원은 호군의 청으로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집에 가서 아들의 맥을 짚어보니 거의 절맥(絶脈)이었다. 사지를 만져보니 냉기가 팔꿈치와 무릎을 넘었고, 복통이 심하여 누르면 거부하였으며, 대변을 보고 싶어도 나오지 않았고, 놀라고 미친 듯이 불안해하였다.

의원은 승기탕(承氣湯)을 처방하고자 했다. 그런데 너무 강한 약이라고 하면서 호군이 반대했다. 물론 가족들도 꺼려했다. 그러나 결국 의원의 의견대로 승기탕을 복용하고서 밤사이 두 차례 대변을 보았고, 새벽이 되자 궐이 풀리고 맥이 돌아왔다.

이로써 진모씨 가족은 의원에 대한 믿음이 돈독해졌다.

그런데 아들이 병이 나은 뒤, 이제는 진모씨의 아내가 병이 났다. 아들의 걱정과 피로로 인해 병이 난 듯했다. 처음에는 두통과 오한, 발열이 있었는데, 아들을 치료했던 의원이 향소음(香蘇飲)을 한 제 주니 땀을 내고 풀렸다. 그러나 곧 다시 과로로 재발하여 열이 나고, 입이 쓰고 귀가 먹먹해졌으며, 마침 월경 기간과 겹쳤다.

의원은 "열이 몸속 깊숙이 들어갈까 염려됩니다."라고 하면서 시호, 황금과 함께 생지황, 적작약, 목단피를 더해 썼으나 열이 여전히 내리지 않았다. 더욱이 얼굴이 붉고 설태는 누렇고, 헛소리를 하며 맥이 빨랐다. 그러자 진모씨가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의원은 "사기가 소양경(少陽經)과 양명경(陽明經)을 범한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이에 소시호탕(小柴胡湯)을 기본방으로 해서 황금을 볶은 것 대신 생황금으로 바꾸고, 죽엽과 등심초를 더해 인경약으로 삼았다. 의원은 진모씨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제 안정이 될 것입니다. 내가 잠시 다른 일로 출타를 하게 되었으니, 만약 내일 늦어지면 호군에게 상의하시오. 혹은 이 처방 그대로 먼저 한 번 더 달여 복용해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이튿날 정오 무렵 돌아왔다. 그런데 약방에 도착하자 약방에는 이미 진모씨 집안에서 보낸 사람이 와 있었다. 출타 중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왕진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원은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진모씨의 집에 가니, 이미 호군도 와 있었다.

진모씨가 울며 말하기를 "마누라의 병이 크게 변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이 "어떤 증상으로 변했단 말이요?"하고 묻자, "어젯밤 선생의 약을 먹고 밤새 번열로 잠을 못 자더니, 오늘 아침 갑자기 이를 악물고 눈을 감은 채 인사불성이 되고 소변을 지렸습니다. 선생이 문제가 있으면 호군과 상의하라고 하셔서 제가 아침에 호군을 불러 상의하여 처방대로 한 번 더 달여 복용하게 하였으나, 지금까지 호전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이 호군을 쳐다보자, 호군 또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의원은 "어제 병세가 비록 중하였으나 이미 처방을 복용했다면 설령 즉시 효과가 없더라도 이 지경에 이를 리는 없소이다. 혹 다른 의원의 약을 더 먹은 것이 아니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진모씨가 "내 아들놈을 살려주신 은혜가 깊어 오로지 선생만 의지하고 있으니, 어찌 감히 의원을 바꾸겠습니까?"라고 했다.

이때 호군이 문득 말을 꺼내기를 "지난번에 구해 온 약재를 오늘 아침에 보니 생황기(生黃耆)가 들어 있었습니다. 처방에는 생황금(生黃芩)으로 되어 있었는데, 약재상이 생황기로 잘못 내어 준 것입니다. 제가 이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사람을 시켜 약재상에 가서 바꿔 오라고 보냈는데, 혹 어젯밤에 생황기가 잘못 들어간 처방을 복용한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어제 달여먹고 남은 약 찌꺼기를 확인해 보니 과연 황기가 들어 있었다.

의원은 "이제 보니 황기를 잘못 복용하여 열을 붙들어 두고, 안으로 심포(心包)를 공격해 구규(九竅)를 막아 혼절하고 이처럼 변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적각반탕(導赤各半湯)에서 인삼을 빼고 금은화(金銀花)와 금즙(金汁)을 더하고, 외용으로 자설단(紫雪丹)을 물에 풀어 혀에 찍어 쓰게 하였다.

금즙(金汁)은 사람의 분변을 발효, 침출하여 얻은 액체로 청열해독(淸熱解毒), 개규(開竅) 작용에 활용했다. 자설단(紫雪丹)은 해열, 진정, 항경련 효과가 있는 환약이다.

의원의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자 혼수상태에 이르렀던 부인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고, 연이어 네 제를 투여하니 점차 기색이 좋아졌다. 다만 정신이 멍하고 귀가 먹먹하며 때때로 헛소리를 하였으므로, 다시 음(陰)을 기르고 심장을 안정시키는 약으로 조리하여 한 달 남짓 지나서야 완전히 평복되었다.

만약 호군이 약의 잘못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진모씨 집안은 부인의 병세 악화의 원인으로 반드시 의원 탓을 했을 것이고, 의원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의원이라면 처방뿐만 아니라 조제에도 신중해야 한다. 더 나아가 환자가 의원의 처방을 지시대로 제대로 복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정행헌의안(程杏軒醫案)>陳某子病愈後, 其婦憂勞傳染. 初起頭疼寒熱, 予與香蘇飲一服汗解. 旋又勞復發熱, 口苦耳聾, 兼值經期, 恐其熱入血室, 酌以柴芩煎加生地, 赤芍, 丹皮, 熱猶不退, 更加面赤舌黃, 譫語脈數. 予曰:邪犯少陽陽明也. 仿生生子小白湯, 炒黃芩換生黃芩, 加竹葉燈心為引. 並語某曰:予適有他出, 倘明日遲到, 可請胡君商之, 或照原方先服一渣亦可. 次日午刻予歸, 渠已著人相促數次, 急造其廬, 其泣曰:病大變矣. 問其何狀, 曰昨服尊劑, 夜來煩熱不眠, 今早忽咬牙閉目, 昏厥遺尿, 已請胡君斟酌, 並照原方煎服一渣, 迄今不轉奈何. 予曰:昨病雖重, 然已加增藥味, 即不應驗, 亦不至此. 豈更服他醫藥歟? 某曰:小兒病承救活, 深為感佩, 今且專心倚仗, 曷敢易醫. 胡君恍然曰:往日市藥, 吾未之閱, 今早閱劑內生黃芩, 藥店錯發生黃耆, 比令換去, 得無昨劑中誤服黃耆耶? 因驗昨傾之藥渣, 果然. 予曰:此病受邪本重, 前藥悉力驅之, 尚不能解, 誤服黃耆, 將邪熱補住, 內攻心包, 迷塞竅隧, 故致變若此. 惟有急瀉心包之熱, 通竅避邪, 庶有生機. 擬導赤各半湯, 除人參, 加銀花金汁, 外用紫雪點舌. 飲藥至墓, 神采略回, 連投四劑, 浸有起色. 惟神呆耳聾, 時多妄語易以服蠻煎兩服, 神明稍清. 後用養陰定志之品, 月餘始平, 是役也. 使非胡君驗明藥誤, 在病家必歸咎於醫, 而醫亦不自知其故矣. 識此凡治重病, 所市藥劑, 醫須親驗, 不可忽也. (또 진모의 아들이 병이 나은 뒤, 그 아내가 걱정과 피로로 병이 옮았다. 처음에는 두통과 오한·발열이 있었는데, 내가 향소음을 한 제 주니 땀을 내고 풀렸다. 그러나 곧 다시 과로로 재발하여 열이 나고, 입이 쓰고 귀가 먹먹해졌으며, 마침 월경 기간과 겹쳤다. 열이 혈실로 들어갈까 염려되어 시호·황금 달인 약에 생지황·적작약·단피를 더해 썼으나 열이 여전히 내리지 않았다. 더욱이 얼굴이 붉고 설태는 누렇고, 헛소리를 하며 맥이 삭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사기가 소양과 양명을 범한 것이다." 이에 생생자의 소백탕을 본떠, 황금을 볶은 것 대신 생황금으로 바꾸고, 죽엽과 등심을 더해 인경으로 삼았다. 또 진모에게 말하였다. "내가 잠시 다른 일로 나가니, 만약 내일 늦어지면 호군에게 상의하시오. 혹은 이 처방 그대로 먼저 한 번 더 달여 복용해도 좋습니다." 이튿날 정오 무렵 내가 돌아오니, 이미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재촉하였다. 급히 그 집에 가니, 그가 울며 말하였다. "병이 크게 변했습니다." 어떤 증상이냐고 묻자, "어젯밤 선생의 약을 먹고 밤새 번열로 잠을 못 자더니, 오늘 아침 갑자기 이를 악물고 눈을 감은 채 혼궐하고, 소변을 지렸습니다. 이미 호군을 불러 상의하여 처방대로 한 번 더 달여 복용하게 하였으나, 지금까지 호전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어제 병세가 비록 중하였으나 이미 약미를 더했으니, 설령 즉시 효과가 없더라도 이 지경에 이를 리는 없다. 혹 다른 의원의 약을 더 먹은 것이 아니오?" 진모가 말하였다. "아이를 살려주신 은혜가 깊어 오로지 선생만 의지하고 있으니, 어찌 감히 의원을 바꾸겠습니까?" 이때 호군이 문득 깨닫고 말하였다. "전에 약을 살 때 내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약첩을 보니 '생황금'이라 적혀 있었는데, 약방에서 잘못하여 생황기를 내어주었습니다. 바꾸어 오라고 했는데, 혹 어제 약에 황기를 잘못 넣은 것이 아닐까요?" 이에 어제 남은 약 찌꺼기를 확인해 보니 과연 황기가 들어 있었다. 내가 말하였다. "이 병은 사기를 본래 중하게 받았는데, 앞의 약으로 힘껏 몰아내도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황기를 잘못 복용하여 사열을 보하여 붙들어 두고, 안으로 심포를 공격해 구규를 막았으니, 이처럼 변한 것입니다. 이제는 급히 심포의 열을 사하고 구규를 열어 사기를 피하게 해야만 살 길이 있습니다." 이에 도적각반탕을 쓰되, 인삼은 빼고 금은화와 금즙을 더하고, 외용으로 자설을 혀에 찍어 쓰게 하였다. 약을 복용하자 혼수 상태에 이르렀던 신색이 조금 돌아왔고, 연이어 네 제를 투여하니 점차 기색이 좋아졌다. 다만 정신이 멍하고 귀가 먹먹하며 때때로 헛소리를 하였으므로, 다시 복만전을 두 번 복용하게 하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그 뒤에는 음을 기르고 뜻을 안정시키는 약으로 조리하여 한 달 남짓 지나서야 완전히 평복되었다. 이번 일은 만약 호군이 약의 잘못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병가에서는 반드시 의원을 탓했을 것이고, 의원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기록하노니, 무릇 중병을 치료할 때에는 구입한 약재를 반드시 의원이 친히 확인해야 하며,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