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붙이면 스트레스 보인다'… 명함 절반 크기 패치가 찾아낸 '마음의 신호'
파이낸셜뉴스
2026.05.20 05:56
수정 : 2026.05.20 05:56기사원문
<39> 서울시립대 김선홍 교수 - 성균관대 유재영 교수팀
범죄 수사 쓰이는 '거짓말 탐지기' 원리… 무선 웨어러블 기기로 구현
심박·호흡·손땀 등 다중 생체신호,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실시간 해석
소아 수면 장애 진단부터 의사 훈련 평가까지 임상 현장 활용 성과 입증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심리 상태나 수면 장애를 정밀하게 측정하려면 거대한 대형 장비의 힘을 빌려야 했다. 병원실에 누워 온몸에 수십 개의 전선을 덕지덕지 붙인 채 잠을 청해야 하는 수면다원검사(PSG)가 대표적이다. 범죄 수사에 쓰이는 거짓말 탐지기(폴리그래프) 역시 온갖 유선 센서로 온몸을 칭칭 감아야 한다. 측정 장비 자체가 주는 압박감과 불편함 때문에 '없던 스트레스도 생길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선 사라진 명함 크기 패치
얇고 가볍지만 성능은 강력하다. 이 작은 패치 하나가 심박수, 숨소리(호흡), 손땀(피부전도도), 피부 온도 및 열전도 특성 등 인간의 복합적인 생체 신호를 무선으로 동시에 측정하고 해석해 낸다. 초소형 무선 충전 배터리를 탑재해 한 번 붙이면 무려 37시간 동안 연속으로 작동하며 장시간 일상생활을 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 거짓말 탐지 원리로 마음 분석
이 패치가 마음을 읽는 비결은 정밀 센서와 고전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결합에 있다. 패치 내부에 탑재된 미세 마이크와 가속도 센서가 심장 밸브의 닫히는 소리와 가슴벽의 호흡 움직임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전극은 스트레스로 인해 미세하게 활성화되는 땀샘 활동을 감지한다.
이렇게 모인 복잡한 데이터들은 'k-최근접 이웃(KNN)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으로 종합 분석된다. 무선 인터뷰를 통한 거짓말 탐지 상황에서는 94%의 민감도로 심리적 동요를 잡아냈으며, 얼음물에 손을 넣는 극심한 신체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97%의 민감도와 99%의 특이도로 스트레스 상태를 명확히 구별해 냈다.
■ 소아 환자 자율신경 패턴 확인
연구팀은 실험실을 넘어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성과를 증명했다. 생후 7개월에서 30개월 사이의 소아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병원의 거대한 수면 검사 장비와 비교 임상을 진행한 결과, 아이들의 잠자리를 방해하는 선 연결 없이도 각성이나 호흡 곤란 이벤트를 높은 정확도로 포착해 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다운증후군 환아들만의 특이한 자율신경계 바이오 패턴을 확인했다. 다운증후군 소아 환자들은 일반 어린이 환자에 비해 부교감신경 활성(HRV-HF)은 확연히 높은 반면, 교감신경 성향의 지표(CSI, EDA 등)는 낮게 나타났다. 이는 자율신경계 조절 기능이 미숙해 발생하는 영유아 수면 질환을 복잡한 장비 없이 장기간·비침습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가능성을 열어준 성과다.
■ 의사 스트레스와 수행도 관계
흥미로운 현장 실험은 또 있다. '왜 어떤 의사는 위기 상황에 강하고, 어떤 의사는 급격히 무너질까?' 연구팀은 2년차 소아과 레지던트 16명을 대상으로 실제 응급실과 똑같이 연출된 시뮬레이션 훈련장에서 생체 신호를 실시간 추적했다. 소아 발작 대응, 보호자에게 비보 전달 등 압박감이 극심한 가상 시나리오가 주어졌다.
분석 결과, 훈련 중 심박변이도(HRV)나 피부전도도(EDA) 등 스트레스 생체 지표가 급격히 상승한 레지던트 일수록 전문 임상 강사들이 매긴 수행 능력 평가 점수가 명확하게 낮았다. 위기 상황에서 몸이 느끼는 물리적 스트레스 지수가 실제 의료 행위의 퍼포먼스를 저하시키는 현상을 웨어러블 다중 생체 신호 데이터로 생생하게 입증해 낸 것이다.
이번 성과는 독립적으로만 다뤄지던 복잡한 생체 신호들을 단 하나의 무선 패치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은 다양한 생체신호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인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향후 정신건강, 수면 질환, 중환자 관리, 디지털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밀 진단과 개인 맞춤형 치료를 연결하는 핵심 기술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슴 위에 붙인 작은 패치 하나가 우리 몸과 마음의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가장 먼저 읽어내고 지켜주는 차세대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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