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역사를 견뎠나… 韓日 80년 비추다
파이낸셜뉴스
2026.05.22 04:00
수정 : 2026.05.22 04:00기사원문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展
재일조선인의 시선부터 총 5장으로 구성
다양한 시대적 배경 속 교류의 순간 포착
백남준·이우환·나카무라 마사토·이응노…
회화·조각·사진·뉴미디어 등 200점 공개
1945년 이후 한국과 일본 미술이 만나고 갈라지고 다시 이어진 장면들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펼쳐 보이는 전시가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전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을 오는 9월 27일까지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광복과 일본의 패전 이후부터 동시대까지 이어진 양국 미술 교류의 흐름을 43명(팀)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뉴미디어 등 200여점으로 조망한다.
전시는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 '사이에서: 재일조선인의 시선'은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활동한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삶과 작업을 다룬다.
조양규는 재일조선인의 척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고, 곽인식은 일본 미술계 안에서 추상 실험을 전개했다. 조지현의 이카이노 사진은 재일조선인 밀집 지역의 일상과 분단의 긴장을 포착한다. 하야시 노리코와 남화연의 작업은 북송사업, 고향, 기억, 노래의 문제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불러낸다.
두 번째 장 '백남준과 일본 예술가들'은 1960년대 일본 전위예술과 백남준의 접점을 따라간다. 백남준은 도쿄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이후 독일과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도 일본 예술가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히라타 미노루가 기록한 소게츠 아트센터 퍼포먼스 사진에는 피아노를 부수고 세제를 머리에 붓는 등 기존 예술의 문법을 뒤흔들던 초기 백남준의 면모가 담겼다. 하이 레드 센터의 '쉘터 계획'과 백남준의 위성 프로젝트 '바이 바이 키플링'은 냉전과 기술, 전위예술이 맞물리던 시대의 감각을 보여준다.
세 번째 장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 미술 교류가 제도화되는 과정을 살핀다. 1960~70년대 일본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전은 박서보, 유영국, 서승원, 이우환, 윤형근 등 한국 추상미술이 일본에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사이토 요시시게, 다카마쓰 지로, 고시미즈 스스무, 스가 기시오 등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이 한국 미술계와 접점을 만들었다. 대구현대미술제와 같은 지역 기반 교류는 한일 미술사가 서울과 도쿄라는 중심지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네 번째 장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는 199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의 이동과 비공식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나카무라 마사토는 한국을 방문해 고낙범, 이불 등과 교류했고, 이후 무라카미 다카시를 한국으로 초대해 전시를 열었다. 이 만남은 한일 청년 작가들이 제도적 틀보다 빠르게 동시대 감각을 공유한 장면으로 남았다. 이불의 '사이보그' 연작은 기술 문명과 여성 신체, 욕망과 결핍이 겹친 미래적 신체를 통해 1990년대 동시대 미술의 긴장을 압축한다.
마지막 장 '함께 살아가다: 예술 너머의 연대'는 2000년대 이후 한일 작가들이 서로의 역사적 고통을 어떻게 마주했는지 묻는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남태평양의 해저에서'는 제국주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환기하고, 이응노의 '군상'은 역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다카미네 다다스의 '베이비 인사동'은 재일코리안 여성과의 결혼 과정에서 마주한 차별과 정체성의 문제를 자전적 서사로 풀어낸다.
다나카 고키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현대 일본 사회의 혐오 문제를 교차시키며,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 묻는다. 정연두의 '마술사와의 산책'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가 겪은 상실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재난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한 개인의 일상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예술의 태도를 보여준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지난 시간 두 나라가 경험해 온 역사적 순간들과 그 속에서 형성된 미술 교류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기회"라며 "전시를 통해 한·일 양국의 현대미술이 지닌 위상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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