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아들 생각에 고통… 가족사진 찍는게 소원"

파이낸셜뉴스       2026.05.25 19:08   수정 : 2026.05.25 19:07기사원문
40년전 인천 작전동 살던 4살 최재명
운영하던 매점서 집 걸어가다 사라져
이름 쓸 수 있었고 짙은 쌍꺼풀이 특징



"저는 지금도 아들이 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라는 말은 아직도 못하겠어요."

박정순씨는 40년 전 실종된 아들 최재명씨(현재 나이 44·사진)를 떠올리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설 명절을 앞두고 사라진 네 살 아들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됐지만 부모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1986년 1월 29일 인천 계양구에서 실종됐다. 당시 박씨는 인천 작전동 한 공장 밀집지역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사건 당일은 설 명절 준비로 분주하던 시점이었다. 박씨 남편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먼저 지방으로 내려갔고, 박씨는 외상값 문제로 매점을 지켜야 해 두 아들을 데리고 남아 있었다. 매점에 와 있던 아들은 집에 있는 할머니에게 다녀오겠다며 가게를 나섰다. 집은 개울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아이들은 평소에도 자주 오가던 길이었다.

박씨는 "평소에도 혼자 잘 다니던 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그런데 오후가 돼도 아이가 집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개울 따라 걸어가는 뒷모습까지 봤다"며 "그때는 휴대전화도 CCTV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곧바로 아들을 찾아 나섰다. 실종 전단지를 돌리고, 닮은 아이가 있다는 말만 들려도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박씨는 "충북, 경남, 부산 등 안 가본 곳이 없다"고 말했다.

실종 이후 박씨 가족의 삶은 크게 흔들렸다. 아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생계까지 위태로워졌다. 박씨는 "가게 문을 닫고 찾아다니다 보니 굶어 죽게 생긴 적도 있었다"며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다시 일하고, 또 제보가 들어오면 찾아 나서기를 반복했다"고 전했다.

두 살 터울 동생 역시 형의 빈자리를 힘들어했다고 한다. 박씨는 "맨날 같이 놀던 형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니까 어린 동생도 많이 허전해했다"며 "눈 오면 둘이 눈싸움하고 자전거 타고 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설 명절은 박씨 가족에게 여전히 가장 힘들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은 명절이면 행복하겠지만 우리에게는 트라우마"며 "큰 아들 실종 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위암 등 각종 질병까지 앓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박씨는 첫째와 만날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박씨는 "당시 네 살이 넘어서 자기 이름을 쓸 줄 알았다"며 "분명 부모가 따로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 살아 있는지만이라도 확인됐으면 좋겠다"며 "내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 한 번도 남기지 못한 네 식구 가족사진을 찍는 일이다. 그는 "먹고살기 바빠서 당시엔 가족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며 "첫째가 돌아오면 네 식구가 같이 제주도도 가고 소갈비도 먹고 싶다.
무엇보다 가족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이 정말 잘생겼었다. 눈도 크고 쌍꺼풀도 짙어서 매점 손님들이 왕자 같다고 할 정도였다"며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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