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美中

파이낸셜뉴스       2026.05.26 18:04   수정 : 2026.05.26 18:37기사원문
지난 500년간 1·2등국 16건 충돌
그중 12건이 결국 전쟁으로 귀결
엘리슨 교수, 美中이 17번째 예측
美中정상회담후 3등국 푸틴 訪中
2등과 3등국이 밀착해 미국 압박
韓외교 거대한 후폭풍 불어올 것

2500년 전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베이징에 등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열흘 전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현실은 역설적으로 이미 함정에 들어섰다.

시 주석은 중국의 부흥과 마가(MAGA·미국 우선주의)는 공존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투키디데스는 동양에서 공자, 맹자가 활동하던 시절 1등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2등 아테네가 평화 공존보다는 끝내 전쟁의 함정에 빠져드는 과정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상세하게 서술했다. 두 강대국은 강자의 논리를 내세워 협력보다는 갈등, 화해보다는 증오를 통해 멸망에 이르렀다.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는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500년간 1·2 등 국가 간의 충돌 16건을 분석한 결과 75%인 12건이 전쟁으로 귀결됐다며, 미중의 충돌은 17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중이 현재의 경쟁구도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전쟁 발발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베이징 정상회담은 미중 양국이 이미 함정에 빠졌다는 장면을 리얼하게 연출했다. 중국 상무부는 정상회담 직전 인천에서 열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 간 무역 경제 협의에서 합의한 다섯 가지 사항을 회담 후 공개했다.

양측이 확실하게 합의한 사항은 무역위원회(board)와 투자위원회(board) 설립뿐이다. 네 가지 사항은 관세협정의 긍정적인 합의 도출, 중국은 소고기(beef)와 대두(bean) 등 농축산물과 미국산 항공기(boeing) 구매 등 협력 증진에 양측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일부 미국 언론은 합의의 모호성을 들어 중국이 미국산 콩(bean)을 몇 번째 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5B의 요구 중 2B인 위원회만 구체적이다.

반면 백악관이 공개한 협의 결과는 중국과는 천양지차다. 보잉 항공기 200대 구매, 지난해 약속한 대두 계약 이외에 3년간 매년 최소 170억달러의 농산물 구매, 미국산 소고기 수입제한 해제 등을 발표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동상이몽의 합의문으로 표출됐다. 중국은 양국 간 무역 경제 협의의 원칙과 방향을 설명했다. 중국은 관세협정에 대해 긍정적인 합의를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전쟁의 핵심인 관세를 이번 회담에서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천 합의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의 양보를 부각하며 구체적 수치 성과를 나열했다.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부족 우려에 대해 중국이 해명할 것이라는 백악관의 발표와 달리 중국은 희토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요컨대 양국 간 실질적인 합의는 없었다. 알코올기피증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건배 후 와인을 마셨지만 성과는 미흡했다. 금년도 미중 정상회담은 4라운드가 계획돼 있으며, 1라운드는 시 주석이 득점했다. 오는 9월 2라운드 워싱턴, 3라운드 11월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4라운드 12월 주요 20개국(G20) 마이애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Nation in decline)'로 각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협력 대가로 중국이 제안한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수용하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재고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건설적'은 미중 관계의 방법론, '전략적'은 미중 관계의 관점, '안정적'은 미중 관계의 목표를 의미한다.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새로운 외교관계 개념이다.

미국이 새로운 개념의 관계를 일단 거부하지 않아 중국은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다. 기존의 1등 스파르타에 도전하는 2등 아테네가 아니라 공동선두 개념이다. 중국은 미국이 공정성과 호혜성을 바탕으로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베이징을 떠나자마자 3등 국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방중하여 미소로 반미 연대의 사진을 찍었다. 2등과 3등 국가가 밀착하여 1등 국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일주일 사이에 1등과 3등 국가의 지도자가 이례적으로 방중함으로써 베이징은 세계 외교의 중심지가 됐다.


미국은 러시아와 밀착한 중국에 공동선두를 허용함으로써 군사와 경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대만 독립을 둘러싼 중국의 공세적 입장, 인공지능(AI) 기술 관련 반도체와 희토류 등 누가 더 상대를 압도할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게임의 최종 결말을 좌우할 것이다. 한국 외교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려오고 있다는 신호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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