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의 적들
파이낸셜뉴스
2026.05.26 18:23
수정 : 2026.05.26 19:30기사원문
분위기는 이듬해 뒤집힌다. 스탠퍼드대 교수 세바스찬 스런이 이끈 스탠리가 코스 전체를 완주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때 거기 함께 있었던 이가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이다. 실리콘밸리 슈퍼스타였던 페이지는 카우보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현장을 돌아다녔다. 먼지투성이 차량 밑바닥에서 노트북으로 코딩을 하는 젊은 과학자 앞에 멈춰 선다. 그 사람이 스런이었다.
페이지가 전한 요지는 이것이다. "필요한 자금은 무한대로 댈 것이니 사람이 탈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주시오." 스런은 공학 천재 드림팀을 꾸려 구글의 비밀조직 X를 만든다.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젝트가 여기서 탄생했다. 라이다(LiDAR) 기반의 인지시스템이 구축되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주행 학습이 무한 반복됐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에 이어 상업화의 길로 간 것이 2016년 자회사 웨이모를 출범하면서다.
웨이모가 미 전역과 외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속도가 중국판 구글 바이두의 진격을 압도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바이두 창업자 리옌훙은 검색엔지니어 출신이다. 딥러닝 대부 제프리 힌턴이 2012년 12월 딥러닝 스타트업 DNN리서치를 비밀경매에 부쳤을 때 입찰에 나섰던 이 중 한 명이 리옌훙이다. 당시 그는 베이징 바이두 본사에서 경매 상황을 지켜보며 베팅 상한액까지 없앴지만 결국 구글에 고배를 마신다.
힌턴 사단을 눈앞에서 놓친 리옌훙은 아예 구글의 조직을 통째로 빼간다. DNN리서치를 흡수한 구글 브레인의 수장 앤드루 응을 최고과학자로 영입했다. 구글의 뇌를 훔쳐갔다는 말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응은 자율주행의 눈과 귀과 될 이미지, 음성인식 기술을 이식했다. 우한, 베이징, 선전 등 복잡한 도시 전체를 실험실로 내준 중국 정부, 여기에 BYD·지리·창안·샤오펑·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독보적인 전기차·IT 생태계가 바이두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웨이모에 바이두가 위협적인 이유는 이래서이다.
이들 양강 세력보다 현재 완성도는 아래지만 미래 패권의 강력한 후보는 역시 미국의 테슬라다. 일론 머스크는 리옌훙과 비슷한 시기 자율주행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특정 지역 로보택시보다 전 세계 수백만대의 양산차를 데이터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많이 달랐다. 전 세계 도로의 테슬라 차량이 카메라와 컴퓨터, 통신 능력을 발휘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의 감독형 FSD 무인 수준을 완전한 무인체제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머스크의 구상이다. 그렇게 기술이 완성되는 순간 판세는 다시 지각변동이 일 것이다.
한국의 현대차는 갖은 난관을 뚫고 비로소 내연기관 신흥 강자로 올라섰지만 자율주행 시대 다시 먼 길을 가야 한다. 급한 건 실전 주행 데이터와 서비스 경험이다. 제조 인프라에 비해 소프트웨어 축적이 말할 수 없이 더디다. 사방팔방으로 실전을 막는 허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행 불가능 구역, 촬영제한 대상이 너무 많다. 개인정보, 보안, 도로규제가 우리처럼 촘촘한 나라가 없다.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절실한 곳이 자율주행이다. 기업이 무모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반도체만으로 살 순 없지 않은가.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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