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보고 연락했어요" 취준생 끌어들인 수상한 제안

파이낸셜뉴스       2026.05.29 08:00   수정 : 2026.05.29 08:00기사원문
온라인에 이력서 올려 아르바이트 찾던 중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연락받고 가담
미필적 고의 성립 여부 법적 공방 벌여
법원 "사회적 해악 크고 엄벌 불가피"



[파이낸셜뉴스] "○○ 세무사무소입니다. 아르바이트 홈페이지에 올리신 글 보고 연락드려요.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면접은 따로 보지 않고 회사로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


지난 2024년 10월경 A씨(34)는 한 세무사무소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채용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전에도 다른 회사에 몇 차례 면접을 보며 취업을 준비했던 터였다. A씨는 부푼 마음으로 안내에 따라 신분증 사본과 계좌번호를 전달했고 카카오톡으로 근로계약서 사진을 전달받았다. 출력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뒤 다시 파일을 보내기도 했다. 인사 담당자는 서류나 위탁 물품 환수금 등을 받은 뒤 요청대로 가져다 두는 업무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종 합격한 A씨는 별도로 출근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11월 4일 첫 출근을 한다는 업무 보고를 마쳤는데 회사는 4일 동안 자택에서 대기하라고만 했다. 그러다가 회사 지시로 업무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던 날부터 약 2주 동안 물품 수거 업무에 나섰다. 이틀에 걸쳐 서울 은평구의 길거리에서 환수금 명목의 돈을 전달받아 다른 직원에게 건네기도 했다. 근무일 중 대부분은 자택에서 대기했다.

통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시도 있었다. 한 인사 담당자는 채용 당일 A씨에게 일에 관해서는 최대한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안내했다. 지방으로 이동하라는 지시에 따라 택시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했다가 '고객 개인 사정으로 업무 건이 취소됐다'는 안내를 받은 뒤 택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복귀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A씨는 세무사무소에서 일한 게 아니었다. 인사담당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으며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 현금 수거책이었다. 환수금 명목으로 돈을 건넨 이는 고객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였다. A씨는 1명의 피해자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487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보이스피싱이나 다른 범죄 행위의 일환인 것을 알면서 고의를 가지고 범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행에 가담하는 줄 몰랐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처음에는 정상적인 업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추후 범죄에 가담한다는 점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이를 인식했을 경우 유죄 취지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재판부는 근무 경위와 과정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비정상적인 점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예를 들어 A씨는 피해자의 사진을 전달받거나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방식으로 피해자와 접촉했다. 어떤 물건을 받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조직의 지시에 따라 누군지도 모르는 외주 업체 직원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현금 수거와 전달 행위는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업무 처리라고 볼 수밖에 없고 이미 널리 알려진 보이스피싱 범행의 전형적인 수법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A씨가 받은 보수가 난도에 비해 고액이라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판결문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에게 카카오톡으로 기본급 198만원에 건별 수당 5만원, 이외 업무 중 발생하는 식대를 포함한 모든 경비를 별도로 지원한다고 안내했다. A씨는 현금 수거 업무의 보수로 3회에 걸쳐 38만원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금액은 피고인이 실제 지출한 교통비, 식대 등 경비가 포함됐다고 해도 업무의 특성에 비춰 상당한 고액이라고 봤다.

아울러 그가 채용되기 전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던 점을 고려할 때 채용 과정이 이례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제13형사부(나상훈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사기와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범죄 완성에 필수적인 현금 수거책 역할을 담당하며 피해자로부터 4870만원을 편취하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피해액 중 일부분이라도 피해자에게 돌려주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용서도 받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A씨가 사건 범행의 객관적인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점, 확정적 고의를 갖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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