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감정의 폭풍 속으로"…국립오페라단 '피터 그라임스' 국내 초연
파이낸셜뉴스
2026.05.29 00:05
수정 : 2026.05.29 00:46기사원문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영어 오페라
6월 18~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파이낸셜뉴스] "'피터 그라임스'는 20세기 걸작 중 하나로 관객을 거대한 감정의 폭풍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이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영어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오는 6월 18일 국내 초연한다. 1945년 초연된 이 3막 오페라는 영국 동부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피터 그라임스라는 한 개인을 둘러싼 오해와 소문이 어떻게 집단 폭력으로 확장되는지를 그린 작품. 브리튼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강렬한 서사가 결합된 '스릴러 오페라'로, 혐오와 배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죽음의 도시' 줄리앙 샤바 연출
연출은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로 호평받은 줄리앙 샤바가 맡았다. 샤바는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로덕션 미팅에서 "'피터 그라임스' 한국 초연을 연출하게 된 것은 큰 선물 같은 기회"라며 "이 오페라는 신이나 공주가 아닌 현실 속 사람들을 다루는 사회극으로,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지휘자 알렉산더 조엘과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김재석, 소프라노 문수진·오예은, 바리톤 양준모·이동환 그리고 박혜진 국립오페라단장이 참석했다.
주역을 맡은 벤트리스 역시 "'피터 그라임스'는 영국 오페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며 "지금도 영국 음악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인 만큼 이 역할을 맡게 돼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지휘자 조엘은 이날 한국인 아내를 언급하며 친숙함을 표한 뒤 "20세기 오페라라고 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 음악처럼 장면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특히 "작품 속 인터루드(간주곡)는 다음 장면의 정서를 미리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새벽의 바다와 갈매기, 폭풍우 같은 풍경을 음악으로 그려내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집단 심리를 꿰뚫는 서사와 함께 음악의 힘이 강력하다는 평이다. 독립적인 관현악 명곡으로 사랑받는 '바다 간주곡(Sea Interludes)'이 대표적이다. 브리튼은 바다를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로 그려내며, 불안정한 화성과 날카로운 관현악법으로 폐쇄적 공동체의 긴장과 인물들의 내면 균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샤바 연출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방대한 합창 음악과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며 "오페라는 영상처럼 모든 것을 직접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바다 역시 실제 물이 아닌 배우와 합창단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합창단 의상에는 오래된 영국을 연상시키는 녹청색 계열을 사용했고, 배우들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관객들이 마치 바다 가운데 혹은 해안가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휘자 역시 "합창단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준다"고 거들었다.
테너 김재석, 25년만의 국내 무대
"그라임스는 영웅도 아니고 오페라 속 악인도 아니다. … 내 생각에 그라임스와 같은 사람들은 주변에 여전히 많다!"(피터 피어스)
테너 벤트리스는 2013년 도이치 베를린 오퍼의 '피터 그라임스'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평단의 주목을 맡은 바 있다. 피터 그라임스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한 그는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 절벽 위에서 자신의 신념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물"이라며 "작품 속에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정신적 고통과 어두운 과거가 암시돼 있다. 강렬한 드라마와 깊은 슬픔, 인간 감정의 고조와 침잠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더블 캐스팅 된 김재석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다 25년만에 국내, 그것도 국립오페라단 무대에 선다. 그는 "'피터 그라임스'는 테너 피터 피어스를 위해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며 "그라임스라는 이름 자체는 때 묻고 거친 인간의 이미지가 담겨 있는데, 브리튼은 이를 음악적으로는 오히려 아름답게 표현해낸다"고 말했다. "복합적인 감정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음악을 꼽았다. 그는 "스토리 자체는 결코 쉽지 않지만, 음악이 지닌 극적인 전달력이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웹툰 형태로 작품을 선공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바리톤 양준모 역시 "처음 브리튼의 오페라를 접하고 음악에 모든 답이 있다고 느꼈다"며 "성악가는 그 위에 숟가락을 얹는 존재일 뿐, 음악적 분위기와 스토리, 인물의 감정은 이미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안에 모두 담아놓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준비해 실망시키지 않는 무대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