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묘비 앞에서
파이낸셜뉴스
2026.05.28 18:06
수정 : 2026.05.28 19:36기사원문
英 옥스퍼드주 올세인츠 교회 묘지
'동물농장' 작가 조지 오웰이 잠들어
그 뒤엔 후원자 애스터의 묘비
오웰이 외딴섬서 '1984' 집필할때
거처 임차해주고 폐결핵 치료 도와
지금은 초라한 묘비가 방문객 맞아
2010년 7월 25일 오후, 나는 영국 옥스퍼드주 작은 마을 서턴코트니를 향해 일행과 가고 있었다. 그곳의 올세인츠 교회 묘지는 조지 오웰(1903~1950)이 잠든 곳. 런던과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오웰의 흔적을 답사하는 여정의 마침표였다. 묘역에 들어서자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여기 에릭 아서 블레어 잠들다(Here lies 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태어나 1950년 1월 21일 숨지다(Born June 25, 1903 Died January 21, 1950)
조지 오웰은 작가로 데뷔한 1933년부터 사용한 필명. 묘비에는 생을 받을 때의 본명이 음각되어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묘비를 쓰다듬었다.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소설가님,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석을 어루만지는데 문득 뒤쪽의 묘비가 눈에 들어왔다.
'데이비드 애스터(David Astor) 1912~2001.'
데이비드 애스터가 누구지?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7년간 옵서버 신문 발행인을 지낸 언론인. 소설가보다 아홉 살 아래였지만 그를 존경했고 아낌없이 도와준 사람.
'동물농장'이 세상 빛을 본 것은 1945년 8월 17일. 원고는 1944년 2월에 완성되었지만 런던의 출판사들은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커앤워버그' 출판사가 용기를 냈다. '동물농장'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데뷔 12년 만에 마침내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었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동물농장'이 나온 직후였다. 유력신문 발행인과 유명 소설가.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대화가 통했고,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구상한 소설을 써내고 싶었다. 몸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이야기를 마냥 미뤄둘 수는 없었다. 소설 제목은 '유럽 최후의 남자'. 그는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주라(Jura)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애스터에게 부탁을 한다. 그곳에 들어가 소설을 쓰고 싶은데 도와달라.
천재는 몰입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 몰입은 스스로를 고립시킨 고독한 상태에서 가능해진다. 글 감옥에 갇힌 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주라섬에서도 사람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 반힐(Barnhill). '동물농장'을 써낸 월링턴의 집보다 몇 배 더 고립된 황량한 오지였다. 그곳에는 플레처 집안 소유의 농가 한 채가 있었다. 애스터는 플레처 집안과 연락해 이 집을 장기 임차했고, 오웰은 1946년 말 이곳에 들어갔다.
집필을 하는 동안 오웰은 간간이 피를 토했다. 거칠고 음울한 환경에서 그는 '유럽 최후의 남자'를 탈고했다. 타자기로 친 원고를 수없이 고치고 고쳐 원고를 완성한 게 1948년 12월 4일. 원고를 런던의 세커앤워버그 출판사로 우송한다. 출판사는 책을 편집하면서 '유럽 최후의 남자'라는 제목 대신 작가와 협의해 '1984'로 바꿨다.
그가 섬을 나온 것은 1949년 1월. 폐결핵이 악화되어 더 이상 섬에 머물 수 없었다. 애스터는 그가 런던에 오는 즉시 입원 치료를 받을 대학병원 병실을 잡아놓았다.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몸이 결핵균에 너무 많이 갉아먹힌 상태였다.
그는 병실에서 소니아 브라우넬에게 청혼한다. 첫 부인과 사별한 지 4년 만이다. 1949년 가을 그는 병실에서 애스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브라우넬과 결혼한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눈을 감았다. 장지를 정해준 사람도 애스터였다. 89년의 생애를 산 애스터는 이렇게 유언했다. "오웰 묘지 뒤에 묻어달라."
'1984'는 용어 혼란과 역사 조작을 일삼는 전체주의 폭정을 고발한 디스토피아 소설. 목숨과 맞바꾼 소설이 '1984'다.
조성관 작가·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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