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배낭 메고 아리랑 부르며… 지구 32바퀴 누빈 사나이

파이낸셜뉴스       2026.05.29 04:00   수정 : 2026.05.29 13:56기사원문
총 여행기간 14년 달하는 경이로운 여정
전세계인에 한국 존재 알린 민간 외교관
"여행이란 많이 아닌 깊이 만나는일" 철학
현지가정 2000여곳서 생활·문화 살펴봐
2003년 서거 추후 국민훈장 모란장 받아

"인간 수업은 여행을 통해서 해야 바람직합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고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한 지리교사는 배낭에 'KOREA(코리아)'를 붙이고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단순히 먼 나라를 다녀온 여행자가 아니었다.

한국인이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연 사람,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선생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계일주 여행가로 평가받는다.

1926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어린 시절 인천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인천항을 오가는 배를 보며 세계를 꿈꿨고, 해주사범학교와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지리교사가 됐다.

숙명여자중·고등학교와 인천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교실 안 지리교육의 한계를 느꼈다. 책으로만 배운 세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직접 보고, 걷고, 기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세계일주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1958년 9월 김 선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대학원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유학은 세계여행을 위한 발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여행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순수 관광 목적의 여행은 사실상 어려웠고, 세계일주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었다. 그는 유학 생활 중 여행 경비를 모으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익히며 여행길을 준비했다. 이후 알래스카, 미국 본토,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1961년 귀국했다.

2년 10개월 만의 귀국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방송 출연과 신문 연재, 사진전, 강연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본 세계를 대중에게 전했다. 그의 귀국은 한 여행자의 귀환을 넘어, 한국 사회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김 선생의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1958년부터 1997년까지 총 20회의 세계여행을 이어갔고, 그중 3차례는 완전한 세계일주였다. 160여개국, 1000여 도시, 2000여 가정을 방문했으며, 여행 기간을 모두 합치면 약 14년에 이른다. 이동거리는 지구 둘레 32바퀴에 해당한다고 전해진다. 이 숫자는 단순한 이동 기록이 아닌, 세계를 향한 문이 닫혀 있던 시절 한 개인이 몸으로 열어낸 한국인의 세계 지도였다.

그의 여행은 관광이 아니었다. 유명 관광지와 편안한 호텔을 찾는 여행을 경계했으며 배낭과 지도, 카메라를 들고 시장과 골목, 국경과 오지, 현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김 선생에게 여행은 지리학적 연구이자 인간 수업이었다. 지형과 토양, 자연환경을 관찰했고, 현지인의 생활과 문화를 기록했다. 피곤한 날에도 잠들기 전에는 여행 경로와 금전 출납을 정리했다. 카메라는 기념사진을 위한 도구가 아닌, 한국의 학생과 독자들에게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교육 자료였다. 특히 그의 여행에는 늘 한국이 함께 있었다. 그는 배낭에 'KOREA'라고 적힌 표식을 붙이고 다녔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해외에서 노래를 부를 일이 있으면 '아리랑'을 불렀고, 제자들과 산에 오르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그런 점에서 김 선생은 여행가이면서 민간 외교관이었고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문화 전도사였다.

숙명여고 시절 그의 제자였던 조영선 선생은 "남에게는 친절하고 공손했지만,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했던 사람"으로 회고했다. 김 선생은 누군가 호의를 베풀어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어려운 이들이나 대사관 등으로부터 초대받아도 대문 밖에서 물 한 잔, 커피 한 잔만 받았다는 일화는 그만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여행자는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철학이 여기 있었다.

그는 미소를 여행의 언어로 여겼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달라도 미소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여행 중 감금, 질병, 사고 등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는 낯선 세계 앞에서 적대보다 이해를 택했다. "소박하고 어진 미소가 무엇보다 고귀하다"는 김 선생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여행자의 윤리다.

그가 남긴 기록은 방대하다.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 일기, 지도, 현지 기록 노트는 훗날 '김찬삼의 세계여행',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끝없는 여로', '세계의 나그네'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1983년 전 10권으로 출간된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한국 가정에 세계를 들여놓은 대표적인 여행 전집이 됐다. 그의 여행기는 단순한 감상문이 아닌, 세계의 지형, 역사, 문화, 민속,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인문지리 콘텐츠였다.

특히 그의 여행기에서 인천과 영종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항구도시 인천은 그에게 세계를 상상하게 한 출발점이었고, 세계적인 공항이 들어선 영종도는 그가 세계인의 도시가 될 것을 예견 한 듯 평생의 기록을 모아 '세계여행문화원'을 세운 공간이었다.

이곳은 여행을 통해 배운 세계를 다시 사람들과 나누는 또 하나의 학교였다. 현재 그 공간은 사라졌지만, 관계자들은 김 선생을 기억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늘날 여행은 더 쉬워졌다. 그러나 여행이 쉬워진 만큼 깊어졌는지는 다시 물어야 한다.
김 선생의 삶은 이 질문 앞에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여행은 많이 다녀오는 일이 아니고, 깊이 만나는 일'이라고. 그의 지론대로 여행자는 소비자가 아닌, 관찰자이자 기록자며, 때로는 배움을 전달하는 교육자인 셈이다. 그는 2003년 세상을 떠났고, 200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받았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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