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영구적 책임… 사법 정의 vs 법적 안정성 충돌

파이낸셜뉴스       2026.05.28 18:22   수정 : 2026.05.28 18:21기사원문
'국가폭력 사건 시효 원천폐지'
李대통령, 입법 필요성 언급
법조계 찬반 의견 팽팽히 맞서
"국가의 과오에 면책 줘선 안돼"
"특별법 존재… 증거 왜곡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폭력에 대한 공소시효와 손해배상 소멸시효 폐지를 언급한 가운데 법조계 의견이 크게 갈린다. 찬성 측에선 국가 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인 만큼, 공소시효 제한을 두지 않고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존 헌법 체계에서 작동하는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대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고의 폭력 보상해야"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29일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멸시효를 완전히 배제해서 살아있는 한 형사 책임을 끝까지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그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도록 형사 처벌 시효, 그리고 민사 대상 소멸시효도 폐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폭력 사건에 대한 재심 인정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위한 공소시효,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모두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시효 폐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를 긍정하는 인사들은 과거 대법원의 판례를 언급하며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1월 경찰의 불법구금과 고문 등으로 징역형을 지낸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재판장 차한성)는 △A씨와 가족들이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며 심대한 피해를 입은 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점 △국가가 피해보상을 하기는커녕 손해배상청구 시효만료를 주장하며 피해보상 통로를 봉쇄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국가의 잘못된 폭력행위에 대한 시효가 형법·민법상으로는 만료됐음에도,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잘못 등을 인지한 시점부터 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국가 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향해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한 경우는 개인의 잘못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시효 소멸로 인해 국가에게 면책을 주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나 기본권 보장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만약 시효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국가의 역사적 과오를 시간이 덮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효 폐지에 대해 위헌적 요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법 과정에서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신과 군부 독재 시절 이뤄졌던 불법구금과 고문, 폭행 등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국가 폭력 관련 피해자 보호 가치가 심대할 경우 등의 문구를 적시해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자는 제언이다.

■"법적 안정성 침해...결국 위헌"

시효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미 특별법 등을 통해 과거 국가 폭력 사례에 대한 처벌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대부분의 굵직한 현대사들은 특별법으로 정리가 됐다"며 "이제와서 국가 폭력이라고 광범위하게 시효를 없앤다는 것은 다소 법적 안정성에는 맞지 않다"고 전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공소와 소멸시효를 기초로 사회질서가 유지된 상황인데, 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록 대법원에서 소멸시효 만료에 대해 판단을 내렸더라도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시효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아울러 과거 사건에 대한 증거 오염도 문제 삼았다.
20~30년 전 사건의 경우, 물적 증거가 오염되거나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증언 등도 왜곡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증거와 증언 등이 왜곡되면서 정의 실현에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왜곡된 정의가 정의 실현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도구가 법적 쟁송"이라며 "왜곡된다면 그때부턴 만인의 투쟁 사회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기도 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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